'파란만장' 그랜트 힐의 농구인생

배딸룡 2005.09.20 20:53 조회 수 : 289

'셀러브리티' 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화배우나 뮤지션, 그리고 스포츠 스타등의 연예인이나 유명인사들을 일컫는 말인데요, 결코 아무나 이들이 가진 특별한 재능을 따라할수는 없기에 셀러브리티들은 단어 그대로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NBA의 수많은 스타들 역시 셀러브리티들입니다. 그들이 보여주는 화려한 플레이만큼이나 천문학적인 연봉과 스팟라잇은 그들이 왜 축복받은 사람인지 말해주는 증거가 되기도 하겠죠.

그러나 그 화려함 뒤에는 숨겨진 그들의 땀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죠. 처음으로 농구공을 잡은 이래 남보다 더 나은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주전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노력한 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영광이 있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현실에 나타난 흑인 사회의 특성 상 흑인 선수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NBA의 선수들은 비록 지금은 셀러브리티일지라도 그 시작은 별로 축복받지 못했던 선수들역시 존재합니다.

기본적으로 골대에 매달린 림 하나와 공 하나만 있으면 시작할수 있는 농구는 어찌보면 그들에게는 가장 쉽고 빠르게 자신의 인생을 걸수 있는 스포츠였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슬럼가에서 자라며 농구공 하나로 리그 최고의 포인트 가드중 한명이 되었고 현재는 뉴욕의 단장 자리까지 오른 아이재이아 토마스가 그랬고 리그에서 가장 인기있는 선수중의 한명인 앨런 아이버슨 역시 비가 오면 하수구가 역류하는 집에서 살았다고 하죠.

그런 점에서 비교해볼 때 오늘 소개할 주인공은 어쩌면 그 시작부터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스포츠 스타인 아버지와 인텔리 전문직 여성인 어머니 사이에 외아들로 태어나, 유복하게 자라며 최고의 교육을 받았으며 한번도 힘든 전미 대학농구 우승을 백투백으로 차지한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올스타 투표에서는 마이클 조던을 능가하기도 했던 주인공이기도 하죠.

1972년 10월 5일, 아버지가 몸담았던 카우보이즈 팀의 도시인 댈러스에서 힐은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님 캘빈과 자넷 힐은 소중한 외아들의 교육에 무척 신경을 썼고 굉장히 엄격하게 가르쳤다고 하죠. 이때 제대로 배운 예의범절과 사람들을 대하는 자세는 훗날 그가 아이들이 가장 닮고 싶어할만한 모범적인 리그의 롤 모델이 되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잘 아시는 이야기겠지만, 영화나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자유로운 미국의 청소년들의 모습과는 달리, 힐의 집에는 통금이 있었다고 합니다. 힐이 통금시간을 한번 어기자, 어머니는 힐의 방에 있는 시계를 부숴버렸다고 하죠. 지키지도 않을 시계를 뭐하러 놔두느냐는 의미로 말이죠.

그런 그에게 대학 최고의 코치중 한명이자 선수들을 때로는 시어머니처럼 엄격히 통제하는 코치 K, 마이크 슈셉스키 감독은 어쩌면 가장 힐에게 어울리는 코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범생이었던 힐에게도 코치 K는 패스트푸드를 너무 많이 먹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곤 했다죠) 농구도 중요하지만 학생으로의 본분이 먼저임을 강조하고, 화려한 플레이보다는 팀 플레이를 주문하곤 하던 코치 K의 지도 밑에서 힐은 듀크의 가장 화려했던 시대를 열었습니다.

당시 기억나는 장면 중엔, 역시 크리스찬 래트너의 위닝샷이 있겠는데요, 슛을 성공시킨 래트너도 대단했지만, 사이드라인도 아니고 엔드라인에서 침착하게 그 먼 패스를 성공시킨 힐의 강심장도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팀의 에이스로 올라선 이후로 그는 듀크의 모든 것이었으며 거의 전 부문에서 팀을 리드하는 살림꾼이기도 했습니다. (마이클 조던이 잠시 코트를 떠나 야구배트를 휘두르던 해에 평균 30득점을 넘기며 전미 최고의 득점기계였던 퍼듀의 글렌 로빈슨을 10점대로 묶어버린 경기도 기억나는군요)

1994년의 드래프트에서 로빈슨, 키드에 이어 피스톤즈에 선발된 힐은 아이재이아 토마스의 은퇴와 함께 침몰해가는 피스톤즈의 희망이 되었습니다. 첫해부터 20-5-5의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며(득점은 반올림했습니다. 19.9점이군요;) 키드와 함께 신인왕을 수상한 힐은, 리그에 입성한 해부터 올스타였으며 어디에서든 환영을 받는 슈퍼스타였습니다. 그런 그에게도 약점은 있었는데요, 그것은 바로 3점 슛이었습니다. 대학 4학년때는 제법 던지기도 했고 성공률도 괜찮았지만, NBA와 대학의 3점 라인은 달랐으며 게다가 그가 상대해야 하는 수비수들의 수준은 큰 차이가 있었죠. 그리고 당시 피스톤즈엔 좋은 3점슈터들이 많았기에, 힐 마저도 3점을 던질 필요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슛거리에 대한 약점마저 그가 보여주는 엄청난 돌파와 덩크, 엔간한 포인트가드들 뺨치는 센스에 묻혀 그닥 두드러져 보이진 않았죠. 순식간에 스핀무브로 상대 선수를 제치고 덩크를 하는 장면이나 상대 수비수의 블록 위로 던지는 레이업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뛸만큼 멋졌습니다. 게다가 거의 완성되어 리그에 입성하는 듀크 출신답게 그는 반쪽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스카티 피펜을 방불케 하는 끈질긴 수비와 헬핑 디펜스는 그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점이기도 했죠. 만약 그에게 부상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아마 힐은 피펜이 떠난 이후 비어있는 최고의 올라운더 스포 자리를 꿰찼을런지도 모릅니다.

당시의 피스톤즈의 멤버들을 살펴보면, 알아주는 슈터인 앨런 휴스턴과 조 듀마스 외에도 2미터 8의 장신에 단단한 몸을 가진 외곽슈터(^^;;)테리 밀스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벤치에는 역시 괜찮은 슈터인 린지 헌터도 있었구요. 그러나 인사이드가 워낙 취약했기에 힐의 어깨는 더욱 무거웠습니다. 테리 밀스와 올리버 밀러 두 땅땅한 인사이더들은 그다지 위압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기 때문이죠. 팀은 28승에 머물렀고 플옵 진출에 실패하지만 힐의 다재다능함은 다음 시즌에 기대를 걸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베테랑 빅맨인 오티스 도프와 불과 17분 정도의 출장시간에 1.5블록씩을 기록하며 팀 수비의 숨통을 틔워준 티오 래틀리프가 가세한 96시즌엔 전년대비 18승을 추가한 46승으로 플옵에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루키라든가 원 온 원 등의 잡지에서 포스트 조던 후보로 항상 힐과 각축을 벌이던 페니와의 대결이었죠. 힐은 19점-7.3리바-3.7어시로 팀을 이끌었지만 샤크-페니는 평균 49점-15리바-10어시를 합작하며 깨끗하게 피스톤즈를 스윕합니다. 정규시즌 내내 득점-리바-어시에서 모두 팀을 리드하며 고군분투했던 힐의 첫 플옵무대는 그렇게 막을 내리고 말았죠.

여전히 팀의 주요 부문을 리드하며(득점-리바-어시-스틸) 54승의 좋은  
성적으로 팀을 이끈 힐은 플옵 1라운드에서 대학 선배였던 래트너가 몸담고 있는 호크스와 대결을 벌이게 됩니다. 힐은 정규시즌보다 더 높은 평균득점을 올리며 활약하지만, 무톰보-래트너-타이론 코빈-스티브 스미스-무키 블레이락으로 이뤄진 호크스 팀은 강했습니다. 5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호크스는 황제가 기다리는 2라운드에 올라갔고 힐은 또다시 1라운드에서 좌절해야 했죠.

당시엔 포스트 조던 후보중 한명이었던 제리 스택하우스가 가세하고 크리스찬 래트너가 가세하는 등 피스톤즈의 로스터엔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들의 성적은 항상 플옵 1라운드가 한계였습니다. 배드 보이즈 시절을 그리워하던 디트로이트 팬들에겐 기나긴 고통의 시간이기도 했죠. 힐은 디트로이트에서 가진 마지막 플옵에서 히트를 상대로 좋지 않은 발목을 이끌고 뛰다 그만 두 게임만에 코트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리고 힐과 피스톤즈 구단은 서로 변화를 모색하게 되었고 힐은 올랜도 구단으로 트레이드됩니다. 힐은 최고의 매너남 답게 그동안 성원해준 피스톤즈 팬들에게 선물을 남기고 떠납니다. 가려진 원석이었던 벤 월러스라는 선물을 말이죠. 그리고 불과 몇년 후 피스톤즈 구단은 우승을 맛보게 되었고 힐은 부상에 신음하다 저번 시즌에야 비로소 정상적인 컨디션을 되찾게 되었으니, 참으로 세상 일이란 예측하기 힘든 것 같습니다.

올랜도에서 맞이하게 된 첫 시즌, 팬들의 기대는 엄청났습니다. 젊은 득점기계 티 맥과 어느덧 중견 선수가 된 힐의 시너지 효과를 상상하면서 말이죠. 그러나 그 엄청난 기대는 단 4게임만에 당혹감으로, 그리고 안타까움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힐은 수술-재활-컴백-시즌아웃을 되풀이 하였으며 내리 4시즌간 기대와 실망을 맛보았던 티 맥은 또다시 헛된 기대를 하게 하느니 차라리 은퇴하는게 낫지 않냐는 말을 할 만큼 큰 안타까움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2004년, 힐은 완벽한 치료를 위해 시즌을 통째로 접게 되었고 힐의 몸 상태에 대한 갖가지 루머가 나돌곤 했습니다. 그리고 티 맥은 휴스턴으로 떠나버렸죠.

가장 주목받던 리그 최고의 인기 스타에서 나락으로 떨어져버린 힐. 높은 위치에 도달했었던 사람일수록 그 위치를 잃었을때 오는 상실감은 훨씬 크다고 하는데요, 게다가 농구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발목 부위의 부상을 딛고 예전의 운동능력을 완벽하게 되찾으리란 보장도 없었습니다. 계속된 수술만큼이나 재활의 시간은 길었고 어느덧 사람들의 입에서는 힐은 먹튀라는 소리마저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가 받았던 관심과 사랑을 생각한다면, 또한 그의 천문학적인 연봉을 생각한다면, 팬들의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겠죠.

아시다시피 힐은 축복받은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입니다. 그는 지금껏 연봉으로만 9천만 달러 이상을 벌었으며 각종 광고계약등을 따지면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었죠. 게다가 그의 아내는 그래미에 노미네이트된 적도 있는 뮤지션입니다. 그가 농구를 접고 개인 생활에 몰두한다고 해도 원하는 것은 뭐든 할 수 있는 환경이라 할 수 있겠죠. 하지만 힐은 농구를 하기 위해 괴로운 재활을 선택했습니다. 수술 이후 그냥 보통 사람이 걷는 정도의 재활과는 비교도 안되는 강도높은 재활 과정입니다. 그는 NBA 코트에 서야 하는 선수였으며 만약 그의 발목이 플레이에 지장을 준다면 힐이 아니라 그 누구라해도 코트에 설 수 없는곳이 NBA라는 리그입니다. 그 수준의 경기력을 회복하기 위해 힐이 얼마나 노력을 했을지는 굳이 표현을 안해도 충분히 상상이 가는 부분이군요.

물론 재활중에 그에게 고통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이가 생겼고 한 가족의 가장이 되었으며 코트 밖의 모습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많은 NBA 스타들이 자선사업과 사회운동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데요, 힐은 그 이전에도 리그의 롤 모델로써 수많은 활동을 해 왔지만 그는 재활 기간동안 더욱 열정적으로 사회활동에 동참하기도 했습니다. 올랜도 팬들에게는 먹튀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지만, 정말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인것 같군요.

그리고 05시즌, 힐은 코트로 돌아왔습니다. 과연 이번엔 그의 유리발목이 얼마나 갈까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의 발목은 잘 버텨주었으며 자기중심적이라는 평판을 듣는 프랜시스와의 플레이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물론 예전의 어마어마한 페네트레이션은 줄어들었지만 대신 훨씬 정확한 점퍼를 장착하고 돌아온 힐은 지난 4시즌의 공백을 딛고 평균 20점에 근접한 성적을 올리며 올랜도를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올스타 게임, 빈스 카터의 어마어마한 1인 앨리웁과 티맥의 레이업도 멋졌지만, 한 선수의 평범한 앨리웁 덩크에 전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지난 몇년간을 부상에 신음해야 했던 힐의 앨리웁 덩크였는데요, 올스타전 정도면 흔히 볼 수 있는 덩크였지만 그 주인공이 힐이었기에 감회는 남달랐습니다. '아 정말 그가 돌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죠.

후반기, 한건의 트레이드 이후 올랜도는 거의 승수를 추가하지 못하며 곤두박질 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시즌 말미, 힐은 오금 부상을 입었으며 팀의 플옵 가능성이 멀어지자 그냥 시즌 아웃을 선언해버렸습니다. 그 부위가 발목이 아닌것이 천만다행일 따름이죠. 만약 부상만 없다면 올랜도는 젊고 굉장히 뛰어난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는 매력적인 팀입니다. 비록 다른 팀들의 발빠른 전력 보강에 비해 별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지만, 드와이트 하워드와 자미어 넬슨이 지금 모습대로 착실히 성장해 준다면 폭발적인 득점력의 프랜시스와 팀의 구심점 역할을 해줄수 있는 힐을 중심으로 무시못할 강팀으로 거듭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힐의 어마어마한 페네트레이션과 덩크는 자주 보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1972년생인 그는 가장 전성기였을 무렵의 4년을 허공에 날려버리기까지 했죠. 하지만 타고난 센스로 어느정도는 운동능력을 커버해줄 것이라 보이며 무엇보다도 힐이기 때문에 팀이 원한다면 무슨 역할을 맡기든지 제 몫을 해낼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지 않을 수 없군요.

그는 몇년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선수가 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는 그랜트 힐입니다. 그의 커리어의 끝에 어떤 업적을 가지고 은퇴하든지 간에, 전 기꺼이 그의 남은 커리어를 응원할 생각입니다. 그가 축복받은 사람인만큼, 돌아온 그를 볼 수 있는 저 자신도 축복받은 팬이라 생각하면서 말이죠. 벌써부터 다음 시즌이 너무너무 기다려지는군요. 가슴이 뜁니다

네이버 매니아 분석중에 정상인 hanbici 님 꺼임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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