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in] 그들은 자주 이민을 간다, 게임 나라로
[중앙일보 2006-07-20 21:10]    

[중앙일보] 온라인 게임을 즐기시나요? 아니시라고요? 해본 게임이라곤 '테트리스' '갤러그'가 전부시라고요? 그런데 왜 요즘 애들은 만날 게임에 빠져 지내는지 모르시겠다고요?

'리니지' '길드워'처럼 요즘 최고 인기를 누리는 MMORPG((Massive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는 40세 이상의 베이비붐 세대들이 즐겼던 '갤러그' 같은 게임과 실질적으로 비슷한 구석이 없습니다. MMORPG는 인터넷을 통해 접속한 여러 사람이 게임 속에서 각자 맡은 역할을 수행하는 게임입니다. 디지털 가상세계에 접속해 MMORPG를 한다는 것은, 쉽게 말해, 그 시간 동안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는 것입니다.

그 다른 나라에는 대부분 착하고 예의 바르며 원기 왕성하고 위트와 기지가 넘치는 사람들이 살고 있죠. 이런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단순한 게임 플레이가 아니고 하나의 사회적 가상 세계(social virtual world)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세상이 어떤 곳인지 궁금하시다고요?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이인화(사진) 교수가 가상 세계의 속내를 독자 여러분께 살짝 들려드립니다. '영원한 제국'이라는 소설로 유명한 그는 온라인에서도 '길드워' 몽골울루스 길드의 군주이자 '몽골리안포스'라는 바람 정령마법사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2006년 초여름 32세 남자와 29세 여자가 강남 커피숍에서 선을 보았다. 남자는 회계사였고 여자는 대기업 회사원이었다. 서로 호구 조사를 하고 나니 할 말이 없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러다 여자가 입을 열었다.

“혹시 게임하세요?”

“하죠. 와우해요.”

“어머! 전 마비해요.”(※‘와우’와 ‘마비’는 각각 블리자드와 넥슨이 개발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마비노기’의 약어)

두 사람은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떠들었고 PC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상대의 게임에 캐릭터를 만들고, 서로 아이템과 게임 머니를 선물하고 미션을 같이하며 하하하 깔깔깔 즐겁게 놀았다. 집에 돌아오니 새벽 1시. 여자의 부모가 자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여자의 엄마는 불같이 화를 냈다.

“너 미쳤니? 남자 집에서 너를 어떻게 보겠니? 게임 중독자라고, 폐인이라고 생각할 거 아니니!”

오늘날 한국에는 화해하기 힘든 두 세대가 공존하고 있다. 맞선 본 여자와 그녀의 엄마는 게임세대와 베이비붐 세대의 편차를 보여주는 에피소드이다. 현실세계에 살며 생존의 필요 때문에 가끔 컴퓨터를 이용하는 세대는 가상세계에 사는 게 삶의 일부가 돼버린 세대를 이해하기 힘들다.

피에르 레비 같은 IT혁명 초기의 연구자들은 후자를 ‘신인류(新人類)’라 불러 문화적 이질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기성세대와 게임세대는 빙하기 툰드라에 적응되어 있던 네안데르탈인과 온난다습해진 새 지구에 적응한 호모 사피엔스만큼 생태환경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한 과장이다. 가상세계 사람들과 현실세계 사람들은 같은 지역, 같은 주소에 살고 있으며, 같은 사회 조직에서 같은 일을 하기도 한다. 두 세계는 ‘디지로그 현상’에 따라 서로 조화되고 융합된다. 로우테크 없이 하이테크가 있을 수 없으며 아날로그 없이 디지털 문화가 있을 수 없다.

어느 시대나 새로운 미디어는 사람들에게 불안한 정보환경처럼 보였다. 그러나 인류는 문자기술, 활판인쇄술을 별문제 없이 수용했고 영화를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였으며 TV와 퍼스널 컴퓨터에 적응해왔다. 디지털 가상세계 역시 약간의 안내만 있으면 모든 세대가 즐겁게 이용할 수 있다.

일례로 ‘리니지2’에서 필자가 있던 혈맹에 ‘정신 차려라’라는 분이 계셨다. ‘리니지2’에서는 보통 9명이 한 부대를 만들어 사냥을 나가는데 그는 지하 요새(던전)에만 들어가면 항상 길을 잃으셨다. 다른 사람들이 다른 방으로 이동한 뒤에도 혼자 남아 있다가 몬스터에게 매를 맞고 있어서 우리는 황급히 되돌아가 그를 구출해오곤 했다.

우리들은 그가 민망해 할까봐 “컴퓨터에 랙(lag·일시적 네트워크 지연현상)이 생기셨나 봐요”라고 위로하곤 했다. 알고 보니 그는 광주에 사시는 62세 노인이셨다. 아무래도 공간지각력이 떨어지는 나이인지라 어둡고 미로처럼 복잡한 곳에 들어가면 헤매게 되신 것이었다. 왜 게임을 하시냐고 물으면 ‘정신 차려라 형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이 나이에 어디 가서 니들(20대)한테 형님 소리 듣겠어. 같이 우우 놀러다니니까 외롭지 않고 좋잖아.”


디지털 세계에서는 먼저 몬스터를 사냥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인류는 본래 사냥꾼이었다. 사용자들은 인류가 처녀림 지구에 신인(新人)으로 등장했던 그 시대의 삶의 양식을 반복하면서 낯선 세계를 정복하고 가치를 창조하는 인생의 은유를 경험하는 것이다.

사냥을 통해 캐릭터가 성장하면 사용자들은 커뮤니티 활동이라 부르는 사회적 관계 속으로 진입한다. 사용자들은 서로 만나서 사랑하고 결혼하며 또 이혼한다. 또 아름다운 저택을 사서 증축하고 장식한다.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공연하고 콘서트를 열기도 한다. 컴퓨터의 동영상 캡쳐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뮤직 비디오도 찍는다.

이렇듯 디지털 가상세계는 풍부한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세계이다. 이 속에는 디지털 스토리텔링이라고 지칭되는 긴박하고 애틋하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모든 인간적인 욕망들의 사랑스러움, 착한 감정들의 진실함, 인간 정신의 자유와 인간 의지의 숭고함을 추구해온 인류의 이야기 예술은 디지털 스토리텔링에 이르러 비로소 완전한 구현의 무대를 얻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자칫 배금주의와 물질만능주의, 말초적 욕망이 지배하는 삭막한 정보의 사막이 될 수도 있는 디지털 사회에 강력한 길항작용을 한다. 인류가 오랜 노력 끝에 도달한 정보화 사회는 디지털 스토리텔링과 더불어 비로소 피가 있고 살이 있고 영혼이 있는 인간의 사회로 발전해갈 것이다.

실제 세상 뺨치는 게임 세상

세금 올리자 '민중혁명'

승리 후 밥그릇 싸움도

가상세계에서도 전쟁을 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평화 시에는 보기 힘든, 격렬한 애증들이 채팅창에 명멸한다. 그곳에선 인간의 비극적 고독이 드러나고, 자신의 자유와 품위를 지키려는 의지가 약동한다.

가상전쟁 중 가장 유명한 것은 2004년 '리니지2' 바츠 서버에서 일어났던 '바츠해방전쟁'이다. 드래곤 나이트 혈맹(Dragon Knight:일명 DK)이라는 지배혈맹의 폭정에 반대하여 피지배계급 민중들이 일으킨 전쟁이다. DK혈맹 군주의 '척살령'에 따라 발표되는 척살자 명단은 절정기에 회당 200명을 넘었다. 척살령은 곧 게임에서 나가라는 통보였다. 민중들의 불만은 2004년 2월의 세금 인상을 계기로 정치 세력화되기 시작했다. 전쟁은 2004년 5월 민중 측의 붉은혁명 혈맹이 기란성을 기습점령하면서 시작되었다. 민중들의 절박한 호소문이 인터넷 게시판에 오르자 의분을 느낀 다른 서버의 사용자들이 자신의 캐릭터를 버리고 '정의와 자유'를 외치며 이들을 돕기 위해 바츠 서버로 밀려왔다. 참전자들은 바츠 서버에서 새로 캐릭터를 만들어야 했기에 형편없는 저(低)레벨일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낮은 레벨 캐릭터로서 내복만 겨우 걸쳤다. 값싼 뼈단검 하나만을 장비한 이들을 프랑스혁명의 상퀼로드 집단에 비유해 '내복단' 혹은 '뼈단'이라 불렀다. 전투력이 낮은 저레벨의 민중들은 지배혈맹 정예사단의 화살받이가 되어 무수히 죽어가면서 유일한 대응방법인 인해전술로 싸웠다. 그리고 7월 17일 아덴성은 함락됐고, 바츠는 해방됐다.

이후 승리의 과실을 둘러싼 갈등으로 혁명군이 분열됐다. 바츠해방전쟁도 승리의 전망이 없는 고립분산적인 전투로 변해갔다. 그러나 많은 참전자들은 전쟁의 패배를 예상하면서도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의 자유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자기희생' 주제의 스토리를 만들어내었다. 그리하여 최후에 승리하는 패배자들, 위엄을 갖춘 순교자들, 타락한 현실에 대해 정의를 주장하는 무법자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리니지 월드에 아로새겼다. 이 전쟁은 많은 일간지에 보도되고, 연구논문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됐다. '한국형 디지털 스토리텔링-바츠해방전쟁 이야기'이라는 책도 출간됐다.

글=이인화 교수 cglyou@ewha.ac.kr

취재 및 연구보조=이영수·신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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