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당신이 진행하는 아침 라디오 방송을 종종 듣는다.  김창완이 보는 요즘 가요, 어떤가?
A)음악에 소리가 한가지 밖에 없다. 도대체가 다양한 소리가 없다.

 

Q) 소리라면?
A)음악에서 소리는 미풍부터 폭풍까지, 귀뚜라미 소리에서 천둥소리까지 다 있을 수 있다.
음악은 그렇게 변화무쌍한 소리의 세계인데, 지금 우리나라의 음악은 어떤 걸 듣더라도

다 같은 색깔이다.  한 가지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정말 답답하다.

 

Q)가사는 어떤가?
A)가사?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혹 들리는 가사들에는 어느 하나 특별한 구석이 없다.
사운드도 똑같고 반주도 똑같다. 심지어 몸짓까지 다들 똑같다.
김혜순 시인은 청승 맞은 시를 써오는 학생들에게 “젊은이들이 로큰롤을 해야지,
왜 트로트를 하나?”라고 말한다고 들었다. 30년 전, 젊은 산울림은 로큰롤을 했다.
지금, 젊은 가수들은 하나같이 울기 바쁘다. 온종일 질질 짜고만 있다. 정말 듣기 싫다.
'얼마나 할 수 있는 게 없으면 저런 것만 하고 있을까' 생각까지 든다.
“너 그만 좀 울어라”고
이야기하기엔, 음악 하는 입장에서 그네들이 너무 안돼 보여 그렇게 말할 수도 없다.
어떤 울음도 이렇게까지 길지는 않을 거다. 그저 저 울음이 언젠간 그치겠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Q)과거에 비해 요즘 음악이 발전한 부분은 뭐라고 생각하나? 기술적인 부분인가?
A)기술적인 면에서도 별로 나아진 것 같지 않다.
다만, 가요가 근 10년 동안 계속 징징대며 울고만 있다는 건 정말 굉장한 일이다.
대단한 대중적인 마취작용이다. 감히 사람들을 무감각하게 만드는 저 대단한 용기.
사람들에게 거의 아무 생각 없이 10년 동안 '우는 소리'를 노래라 우겨 듣게 만드는
기술이야말로 대단한 기술이다. 대체 어떻게 하길래 그게 가능한 건지, 불가사의하다.
난 그게 정말 궁금하다.

 

Q)음악을 듣는 사람보다는, 전반적인 대중 가요 시스템의 잘못이라는 얘긴가?
A)그렇다. 수용자의 선택권을 어떻게든 묘하게 박탈하는 기술, 수용자의 불만을 입막음하는

도취와 현혹.

 

Q)사람들은 10대에 편향된 음악 프로그램들을 비판한다.
A)그런 비판은 쉽다. 하지만 그 전에 자신이 그 어린 친구들의 문화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여 왔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어른들이 먼저 변해야 한다.

 

Q)옛날 노래를 리메이크한 음악도 쏟아진다. 새로운 음악을 만들 자신이 없는 걸까?
A)지금 세상에는 새로운 게 너무 많으니까, 오히려 새롭지 않은 것들이 갖고 있는 느낌이
새롭게 느껴지는 것 같다. 새로운 게 평범해지고, 오히려 과거의 것을 새롭게 만들면

새롭게 느껴지는, 그런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Q)‘산울림'이 지금 다시 음악을 한다면 옛날만큼 사랑 받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
A)옛날만큼의 충격은 주지 못했을 거다. 충격이 일상이 된 시대니까.  그때야 산울림은

모두에게 파격이었고,  한국 가요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지만, 만일 지금 과거에 없던

그런 음악이 나왔다면  사정은 그때보다 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고 패러다임은

바뀌어간다.  과거 한국 음악의 패러다임을 바꿨던 산울림과 들국화는 음악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자기 이야기를 했다.  젊은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건 그 부분이다.

자기 가슴속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걸 표현하려 애쓰라고. 누군가 원하는 음악을 하지 말고

자기가 원하는 음악을 하라고. 자신에게 충실한 음악은 만드는 사람,  듣는 사람 모두를

행복하게 한다. 그게 음악의 힘이다. 난 그걸 느끼며 음악을 해왔다.

 

Q)요즘 음악 중 좋았던 게 있나?
A)인디 밴드들의 음악을 좋아한다. 밴드의 이름은 기억나는 게 별로 없지만, 그들의 거칠고

새로운 느낌이 좋다. 아, 유쾌한 친구들이 있었다. 로큰롤 음악을 하는 오! 브라더스.

 

Q)이런 시스템에서도 좋은 음악은 성공할 수 있을까?
A)글쎄, 대중들의 각성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새로운 문화적인 의식화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나라 같은 상황에도 분명 음악은 만들어지고, 소비된다.  하지만 그 안에서

소비되고 만들어지는 것들이 삶에 대한 충족을 줄까?  그런 건 주는 월급 받아,

주는 밥 그대로 감사히 먹는 그런 삶과 같다.  뭔가 의미 있고, 가슴 뛰고,

안으로 벅차 오르는 그런 게 아니라.

 

Q)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대중 하나하나의 개인적인 노력으로?
A)그렇다. 앞서가는 사람의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대중적인 호응 없이 그런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개인적인 노력은 중요하다.

 

Q)하지만 결국 순환적인 이야기 아닌가?
사람들이 각자 노력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려면 어떤 계기가 필요하지 않나?
A)계기는 이미 우리 주변에 다 마련되어 있다. 사람들은 근 10년 동안 징징 우는 음악만 들어왔다.
어떤 사람이 어떤 순간에 기치를 높이 들고 떨쳐 일어나야만 변화가 일어나는 게 아니다.
지금의 음악 환경 자체가 변화의 필요성을 사람들에게 느끼도록 만들고 있다.

 

Q)그 10년은 구체적인 기간인가?
A)글쎄, 내가 가요에서 똑 같은 소리만 듣기 시작한 게 10년 정도 된 것 같다.
그냥, 가요를 들으면서 혼잣말 한다. “쟤, 또 우네.”

 

Q)만일 2006년, 김창완이 스물세 살이라면, 1977년 데뷔 당시만큼 음악적으로 할 만한

‘꺼리’가 많았을까?
A) 지금 나이의 나도 할 만한 게 얼마나 많은데, 얼마나 하고 싶은 게 많은데.

모비라는 미국 뮤지션이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을 주는 그의 음악을 좋아한다.

그에 비하면 요즘 젊은 가수들이 하는 건 ‘프로파간다’ 같다.
전시적일 뿐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모비가 가지고 있는 어떤‘음악적인 힘’을 좋아한다.
사실 모비와 그의 음악에 대해 내가 뭐라고 말하든 별 상관이 있겠나.
그 ‘좋음’에 대해선 사람들이 직접 듣고 체험할 수밖에 없다.
지금 내가 20대라면 모비 같은 음악을 했을 거다.
아직 그리고 언제나, 음악은 힘이 세고, 할 수 있는 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