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협려

배딸룡 2006.09.12 06:36 조회 수 : 272





세상 사람에게 묻노니,

정이란 무엇이기에 생사를 가늠하게 하는가.

하늘과 땅을 가로지르는 저 새야,

지친 날개 위로 추위와 더위를 몇 번이나 겪었던고.

만남의 기쁨과 이별의 고통 속에 헤매는

어리석은 여인이 있었네.

님께서 말이나 하련만,

아득한 만리에

구름만 첩첩이 보이고... ...

해가 지고 온 산에 눈 내리면

외로운 그림자 누굴 찾아 날아갈꼬.

분수(汾水)의 물가를 가로 날아도

그때 피리와 북소리 적막하고

초나라엔 거친 연기 의구하네.

초혼가를 불러도 탄식을 금하지 못하겠고

산귀신도 비바람 속에 몰래 흐느끼는구나.

하늘도 질투하는지 더불어 믿지 못할 것을... ...

꾀꼬리와 제비도 황토에 묻혔네.

천추만고에 어느 시인을 기다려 머물렀다가

취하도록 술 마시고 미친 노래 부르며

기러기 무덤이나 찾아올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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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작자는 원호문(元好問)입니다.
원호문은 중국 금나라 시인이었습니다.

이 시는 김용의 소설 '신조협려(神鳥俠侶)'에도 인용된 시다. 조금 오래된 중국 무협소설이긴 한데 주인공의 무공같은 것 보다는 남녀간의 정에 더 치중하고 있는 소설이다.

예광 선생이 지적하기로, 김용의 모든 소설에 남녀간의 사랑과 정이 묘사되고 있지만, 어떤 작품도 「신조협려」만큼 복잡다단하고, 그렇게 끈적끈적하며, 그렇게 미묘하며, 그렇게 읽는 이의 폐부를 찌르며, 그렇게 완전하고도 깊이 있는 작품은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이 「신조협려」를 '사랑의 책'이란 의미의 '정서(情書)'라고 불렀다.


원호문의 이 가사는 금나라 황제 장종(章宗) 태화(泰和) 5년인 1205년에 쓰여졌습니다.
당시 그는 병주(幷州, 지명)로 과거를 보러 가는 중이었는데, 길에서 우연히 기러기를 잡는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이 원호문에게 말하길,


"내가 기러기 한 쌍을 잡았는데 한 마리는 죽었고 한 마리는 그물을 피해 요행히 도망을 쳐 살았습니다. 그런데 살아남은 기러기는 도무지 멀리 도망가지 않고 배회하며 슬피 울다가 땅에 머리를 찧고 자살해 버렸답니다."


라는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원호문은 이 이야기에 감동되어 죽은 한 쌍의 기러기를 사서 분수(汾水) 물가에 묻어 줍니다. 돌을 쌓아 표시를 하고는 그 곳을 기러기의 무덤이란 뜻으로 '안구(雁丘, 기러기 안, 언덕 구)'라 칭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이 '매파당(그의 시집)' 중의 '안구사(雁丘詞)'를 지었다.


이 시는 기러기의 죽음을 기린 것이지만 기러기 이야기를 빌어
젊은 남녀의 생사를 초월한 사랑을 노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