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리드 슈퍼 히어로물 <히어로즈>의 성공요인
“왜 나는 여기에 있는가? 왜 우리는 희망적인 세계를 꿈꾸지만 우리의 운명에 대해서는 모를까. 이 세계에서 내 손을 잡아줄 사람들은 도대체 있기는 한 걸까.” 누구나 한번쯤, 이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을지 모른다. 어딘지 굉장하지만 괴물 같은, 그래서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다는 생각. 하지만 불행하게도,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다. 그것이 우리가 외로워하고 절망하고 혹은 분노하는 이유다. 지난 5월 21일, 1시즌이 끝난 NBC <히어로즈>는 2006년과 2007년의 시리즈 중에서 드물게 성공한 작품으로 평균 1,500만 명의 시청자를 끌어 모으며 닐슨 리서치의 20위 권에 포함되기도 한 작품이다. ‘치어리더를 구하고 세계를 구하’는 평범한 영웅들의 이야기에는 과연 무엇이 숨어 있던 것일까.

평범한 사람들이 세계를 구한다



한국에서는 케이블 채널 캐치온에서 방영 중인 <히어로즈>의 이야기는 사실 간단하다. 세계에는 유전적으로 초자연적인 힘을 얻게 된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의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자각하지 못한다. 무엇이 그들을 각성시킬 것인가. 무엇이 그들을 변화시킬 것인가. 무엇이 그들을 영웅으로 만들 것인가. 오케이, 그들은 어떤 사건에 의해 자신의 힘을 자각하고 세계를 구하기 위해 결합한다. 아, 너무 단순한가? 오케이, 그들은 모두 결함이 있다. 일반적인 기준에서 보자면 너무나 평범하고, 평범하다 못해 모자라 보이기까지 하는 사람들이 사건을 통해 스스로를 긍정하는 이야기라면 어떨까? 오케이, 이것은 성장에 대한 이야기다. 아니, 이미 <엑스맨>과 <스파이더 맨>에서 나온 얘기라고? 하지만 이건 TV 시리즈니까 더 촘촘하게 짜넣을 수 있을 거야, 오케이, 오케이! 아마도 <히어로즈>를 창조한 팀 크링은 <스몰빌>과 <로스트>의 제작감독이자 DC와 마블 코믹스의 인기 작가이기도 한 제프 롭과 이런 얘기를 나누었을지 모른다. 물론 팀 크링이 유년기 동안 미국 청년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슈퍼 히어로물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고 해도 말이다.


제프 롭과 한국계 크리에이터 짐 리가 창조한 <배트맨: 허쉬>의 표지


팀 세일이 그린 <니키/제시카>, 그의 작품들은 <히어로즈> 곳곳에 등장한다


1982년 <전격 Z 작전>으로 작가 경력을 시작해 2007년 <히어로즈>를 탄생시킨 팀 크링이 ‘장르의 문외한’이라는 사실은 이제 꽤 유명해진 일화다. 그런 그가 선택한 것은 전문가들의 팀을 구성하는 일이었다. DC코믹스의 히트작 <배트맨 허쉬>를 창조한 스토리 작가이자 <스몰빌>과 <로스트>에 컨설턴트와 제작자로 참여한 제프 롭, 그리고 그의 단짝 크리에이터인 팀 세일을 중심으로 하는 팀은 <히어로즈>를 장르적 재미에 충실하면서도 독특한 감수성의 작품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히어로즈>의 성공은 단순히 ‘그래픽 노블’에 관대한 미국 대중문화의 감수성 때문도 아니고, 할리우드가 일찌감치 부활시킨 <스파이더 맨>과 <엑스맨>, <슈퍼맨>의 성공 때문만도 아니다. <히어로즈>의 성공의 근거에는 분명히 2001년 9월 11일 이후에 확산된 미국인들의 공포와 그 공포를 정치적으로 통제한 부시 행정부의 정책들, 그리고 이 모든 경험들이 바꿔놓은 미국 대중문화의 감수성이 존재한다. 그 사건 이후 모든 것이 변했고 <히어로즈>도 예외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이브 뉴욕, 세이브 더 월드

9·11 이후의 영화와 드라마의 변화들: <24>, <제리코>, <월드트레이드센터>, <우주전쟁>


보통, 상상력은 경험에 따라 달라진다. 2001년 9월 11일, 뉴욕에서 벌어진 대참사로 테러에 대한 공포가 만연하자 이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건 (정치인들과) 문화산업 종사자들이었다. 2001년 11월에 첫 방송된 폭스TV의 <24>는 테러리즘에 대한 공포와 분노를, 2004년 BBC와 폭스TV의 합작 미니시리즈 <그리드>는 알 카에다에 대한 적대감을 명징하게 드러냈다. 반면, 같은 해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과 빔 벤더스의 <랜드 오브 플렌티>가 각각 선동적으로, 또한 사색적으로 9.11 테러를 다뤘다면 2006년 올리버 스톤의 <월드트레이드센터>와 폴 그린그라스의 <플라이트 93>은 9월 11일 당일의 비극을 새삼 환기시키기도 했다. 물론 공포는 뜻밖의 상상력을 자극시키기도 했다. 2005년 스티븐 스필버그의 <우주전쟁>은 미지로부터의 충격에 대한 재난극이었고, 2006년 CBS의 <제리코>는 갑작스런 핵폭발 이후의 마을 공동체를 다룬 음모극이다. 9.11이라는 경험은 파괴, 종말, 대학살이라는 키워드로부터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문화적 상상력에 현실성을 부여했다. <히어로즈> 역시 마찬가지다. <히어로즈>에 만연한 공포는 세계의 종말이다. ‘치어리더를 구하고 세계를 구하라’는 애매모호한 메시지는 뉴욕 한 복판에서 핵이 터지리라는 예언으로 구체화된다.

하지만 결국 뉴욕을 구하라는 얘기인데? 뉴욕이나 화성이나 비슷한 거리감인 극동아시아 변방국민의 이런 불평에 대해서 <히어로즈>는 이렇게 둘러댄다. ‘뉴욕 파괴보다 그 때문에 인류가 희망을 잃는 게 더 큰 위기’라고. 그런데 이거야 말로 부시 행정부가 9.11이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비극이며 미국이야말로 가장 큰 피해자라고 호소하던 주장과 동일하다. 물론 <히어로즈>의 인물들이 남의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지는 않지만 이런 세계관이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불편함을 무시한다면 <히어로즈>는 TV로 즐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오락물이다. 이 작품이 쭉쭉 빨아들여 뒤섞어 놓은 것이 미국산 슈퍼 히어로의 전통만이 아니라 다른 문화적/장르적 감수성이라는 점이야말로 <히어로즈>의 미덕이자 매력이기 때문이다.

<히어로즈>가 흡수한 다른 장르의 감수성

슈퍼 히어로 팀을 구성하는 <마블vs캡콤>


<드래곤볼>에 등장하는 캐릭터들


<히어로즈>의 주인공들은 매번 다른 질문과 다른 문제에 직면하고 새로운 능력자들을 발견한다. 그 모든 과정을 거쳐 마침내 그들이 얻는 것은 진실이다. 그리고 성장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대립하고 협력하면서 경험치를 높이는 <히어로즈>의 캐릭터들은 마치 롤플레잉게임의 플레이어처럼 ‘논다’. 게다가 팀 크링이 밝혔듯 <히어로즈>는 일본 만화의 특성을 꽤 많이 차용했다. <와이어드> 5월호에서 팀 크링은 “히로의 천진난만한 순수성은 애니메이션 <드래곤 볼>의 캐릭터를 참고했다. 앞으로도 일본 만화로부터 수긍할 수 있는 지점을 더 수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뿐만이 아니다. <히어로즈>의 설정은 일본 게임회사 캡콤의 <마블vs캡콤>을, 구성적으로는 <드래곤 볼>마저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히어로즈>가 일본 대중문화와 닿아있다고 느끼는 이유는 다른데 있다. 이것은 아시아 시장에서 <히어로즈>의 영향력을 만들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히어로즈>의 방영 초기에 쏟아진 슈퍼 히어로물의 어설픈 변종이라는 힐난은 사실 뒤죽박죽 뒤섞여 있는 온갖 장르의 키워드들을 오해한 결과다.

하지만 무엇보다 <히어로즈>의 성공은 등장 캐릭터들이 관계를 맺고 성장하며 만드는 드라마 덕분이다. <히어로즈>와 같은 ‘하이브리드 슈퍼 히어로물’의 성공은 장르의 사생아 주제에 장르적 법칙에 잡아먹히지 않은 영악함에서 찾을 수 있다. 누구라도 <히어로즈>에 빠져들 수 있던 이유다. <히어로즈>의 마지막 회에는 이런 말이 등장한다. “그렇게 우리 모두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소통이 불가한 상황일지라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히어로즈>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이것은 결국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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