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집 밑
패닉 | 1996-10

100대 명반 선정 앨범 : 패닉 [밑]      대담 : 패닉(이적) VS 김영혁
      글 : 김영혁(대중음악전문가) / 사진 : smooth


패닉과 이적 - 실험, 패기, 메시지에서 자연스러움과 울림, 일상으로의 이동
90년대에 활동 했던 싱어송라이터들의 생존은 이적의 노래 제목처럼 '다행이다'라고 얘기 할만하다. 예컨대, 싱글 단위의 창작을 권장하면서 음악이 지닌 무게감과 가치를 스스로 제거해 가고 있는 한국 주류 가요계가 풍선껌의 세계로 전락하는 것을 가까스로 막아주는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언더그라운드의 열정이 주류 음악의 온도를 올리는 데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가운데서, 앨범 단위로 활약하는 가수들의 존재는 의미가 있다. 이적은 바로 그러한 그룹 속에 속할 수 있는 가수다. 2008년의 한국 대중 음악상이 이적에게 많은 상을 안겨다 준 것은 그의 여전한 음악적 건강함에 대한 답례 혹은 격려였을 것이다.



패닉으로 시작해 카니발, 긱스와 같은 프로젝트를 거치고, 이제 솔로 가수 이적으로 자리를 굳혀 가는 그를 만나기 위해 그가 최근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SBS의 스튜디오를 잠시간 빌렸다. 잠을 자지 못해 눈의 초점을 잃은 인터뷰어 앞에 나타난 밝고 건강한 눈빛의 가수에겐 여전히 10여년 전의 패닉이 갖고 있었던 에너지가 느껴졌다. 비록 하늘 위 UFO를 노래하거나 왼손잡이를 자청하던 그 때의 그 패기는 잦아들었지만.

리뷰 앨범 리스트  번호 노래 아티스트  
01 강(江)  패닉          
02 그 어릿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  패닉          
03 UFO  패닉          
      
'UFO', '강(江)', '그 어릿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는 2008년 7울 28일 24:00까지 무료듣기로 제공됩니다.
"우리는 사실 무언가를 주도해 본 적이 없다"
김영혁 : 인생을 바꾸게 된 계기를 준 앨범이 있다면?

이적 : 외국 음반의 경우는 비틀즈의 음반들, 국내 음반 경우는 들국화 1집을 들 수 있겠다.





패닉을 만들다

한국 대중음악 시장에 바란다

울림을 주는 뮤지션

김영혁 :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명반'이란 어떤 것인가?

이적 : 명반이라면 좋은 음악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건 광범위하거나 막연한 얘기가 될텐데, 그 좋은 음악이 시간 속에서 검증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발매 당시 높은 평가를 받던 음반 중엔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미 지난 시간의 흘러간 테크놀로지의 흔적만 남기는 것들도 있고,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그 위력을 발휘하는 앨범들도 있듯이. 그 음반을 둘러싼 세계와의 공감대, 그리고 그것이 후대에 미치는 영향의 흔적들. 이런 것들이 명반의 요소가 아닐까 생각한다.

김영혁 : 이번 가슴에서 선정한 명반 리스트에 앨범 2장이 뽑혔다. (패닉 71위, 밑 89위) 초창기 패닉의 실험이나 패기가 평가를 얻은 셈인데 외부의 평가를 떠나서 개인에게 있어 이 앨범들은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지.

이적 : 글쎄 (웃음) 개인적으로 패닉 1집 같은 경우는 무엇보다 나를 세상에 알린, '이런 사람이 있다'라는 걸 알린 앨범이니까 뜻이 깊다.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정서가 담겨 있는 앨범이고, 지금 들으면 약간 겸연쩍은 부분, 말하자면 약간의 미숙함이랄까 덜컹거림, 정돈 안 된 느낌도 있지만 반면에 지금 들으면 나도 신선하게 느끼는, '어떻게 여기서 이렇게 할 생각을 했지?'라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물론 지금은 잘 안 듣지만 (웃음)

김영혁 : 두번째 앨범과 첫번째 앨범은 어떻게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적 : 첫번째 앨범은 장르가 조금 더 중구난방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전체적인 사운드의 일관성이 있어서 장르의 다양성이 덜 나쁘게 부각되는 앨범이다. 1집은 굉장한 성공을 했지만 우리는 그렇게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을 못했고, 건방지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 기준으로 '딱 10만장 정도만 팔리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다. 요즘이야 10만장이면 대박이지만, 그 때는 딱 다음 앨범을 만들 수 있을만한 수량이었으니까. 그 때 우리의 모델은 삐삐밴드 같은 것이어서 이것 저것 다 해보자는 식이었고. 그런데 갑자기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발라드를 갖게 되니까 '우리 그 쪽으로 가다간 정체성을 잃어 버릴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해서 2집을 의도적으로 좀 괴팍한 음반으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 조금 더 어둡고 더 거북한 음반. 그래서 1집과는 방향이 많이 다르다.

김영혁 : '달팽이'가 많이 히트했기 때문에 2집의 방향이 바뀐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적 : 그렇다. 왜냐하면 '달팽이'는 히트할 것이라고 생각도 못하고 만든 노래고 그래서 앨범 버전에는 김진표도 안 들어있다. '아무도' 라는 노래로 데뷔해서 활동했고, 그 당시에는 라디오에 엽서가 많이 오던 시절이었는데 PD들이 신청곡 엽서를 보여주면서 '너네 곡 바꿔야겠다'란 얘기를 자주 해줬다. 그러면서 곡을 바꿨고 부랴부랴 진표가 색소폰을 부는 버전으로 바꿨다. '왼손잡이'를 하면서 우리에게도 여러 가지가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지만 대중들에게는 그래도 '발라드 가수'라는 이미지로 굳어지는 느낌이었고, 그래서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다른 길로 갔다.

김영혁 : 돌이켜 보면 90년대는 대중음악적으로 참으로 정의하기 힘든 시기였던 것 같다. 모던 록과 힙합이 주류 음악으로 떠올랐기 때문에 80년대 외국 음악을 듣던 한국 음악 팬들은 뭔가 혼란스러웠던 시기였고, 그 사이 서태지를 필두로 한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면서 오랫동안 대중 음악 시장에서 득세해 오던 해외 음악들을 눌렀던 시기다. 개인적으로 80년대와 90년대는 음악적으로 어떻게 달라졌다고 생각하는가?

이적 : 몇 마디로 정리하기는 좀 힘들겠는데... 80년대에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TV에 나오는 가수들보다 TV에 나오지 않는 가수들이 더 우월하다고. 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을 해서인지 음반 판매량 역시 후자의 가수들이 더 우월했던 것 같다. 한 번도 TV 출연 안하고 자기 색깔을 가진 사람들이 음반 시장에서 분명한 자기 지분을 갖고 있었고...

김영혁 : 이를 테면 이문세 같은 가수를 말하는가?

이적 : 맞다. 그리고 들국화, 고 김현식, 김현철 등의 가수들도 80년대 말에 데뷔했었고. 그런 것을 보면 80년대는 개인적으로 양 세계로 우월성을 양분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기였다. 그런데, 90년대에 서태지가 등장하면서 전체적인 파이가 커졌고, 오버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주류 가수들, 이를테면 듀스 같은 팀도 음악적으로 전혀 꿀림이 없는 시절이 도래했다. 그런 변화의 과정 속에서, 뮤지션 입장에서 보면 '뮤지션의 순수주의' 같은 것이 불필요해진 그런 느낌이 있었다. 말하자면 TV 출연이 타협처럼 비춰지는 시대가 지나간 것이었다. 서태지가 TV 활동도 하고, 물론 듣기 싫은 음악도 많이 있었지만 다양한 가수들이 각자 자기 음악을 TV에 들고 나와서 들려주면서 오버-언더그라운드의 구도가 깨지기 시작했고, 그것에 대한 순기능과 역기능이 동시에 나타났던 시기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 좋은 뮤지션들이 계속 나와 줬으면 좋았을텐데, 어느 순간에 기획사에서 만들어 낸 상품들이 점점 더 높은 비율을 갖게 되면서 언더는 해체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인디'라는 이름이 '언더'라는 단어를 대체하기 시작했는데, 예전의 언더에 비해선 훨씬 더 작은 파급력을 갖고 있었다. 물론 그들의 재능은 변함 없는 것이었겠지만.

김영혁 : 패닉을 구상하게 된 시점의 얘기를 들려 달라.

이적 : 김진표와 나는 25년 정도 알고 지낸 사이다. 그 친구가 중고교 시절 음악 한다고 부모님 속 썩힐 때 옆에서 그걸 부추겼던 사람이 바로 나였고. 사실 나는 밴드를 하고 있다가 밴드를 나오면서 솔로 앨범을 준비했고, 데모를 들고 들국화의 최성원씨를 찾아갔다. 그래서 음반을 하게 되었는데, 솔로로 하기에는 나도 부담스럽고 솔로와는 다른 일종의 팀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인물이 바로 김진표다. 그 전에 김진표와는 '다시 처음부터 다시' (훗날 패닉 1집에 수록된 곡)를 같이 공연한 적도 있었고. 당시 그는 고3이었는데, 어떻게 보면 상당히 위험한 유혹을 한 것이다. 잘 안되었으면 두고 두고 본인과 가족들에게 욕 먹었을텐데.(웃음) 잘 풀렸던 것이다. 어쨌든 그래서 패닉 1집이 나오게 되었다. 95년 11월이었던 것 같다.

김영혁 : 2집의 타이틀은 UFO였다. 당시 UFO를 처음 들었을 때 첫번째 싱글로 매우 적당한 곡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뮤직비디오는 보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꼭 UFO를 히트시켜야 겠다는 강박은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기획사로부터 선택의 자유 같은 걸 보장 받은 편이었나.

이적 : 최성원 선배님(당시 패닉 음반 제작자, 들국화 출신 – 편집자 주)은 1집부터 모든 걸 우리에게 맡겼다. 음악적인 간섭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뮤직비디오는 어떻게 찍을까 고민했는데 이게 소재가 UFO이다 보니 표현하기 애매한 구석이 있었다. 어떻게 예산을 써도 이게 조악하면 돈은 돈대로 들이고 실망은 실망대로 하겠다라는 생각도 있었고. 그리고, 그 당시에는 라이브 콘서트로 승부를 보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앨범 나오자마자 전국 투어를 시작했었다.

김영혁 : 2집의 '벌레', '마마', '혀' 등은 방송 금지를 받았다. '엿이나 쳐먹으라지' 정도로 가사가 강하긴 했지만 따져 보면 원초적인 욕설은 없었다. 단어 선택만 놓고 봤을 때, 사회적인 기준에서 탈락하지 않는 수준에서 사람들과 소통하고픈 일종의 합의점이란게 있었는지?

이적 : 그 때가 어느 상황이냐면 사전심의가 폐지되었던 해다. 1집만 해도 심의번호가 있었는데 2집부터 심의번호가 없어졌다. 그래서 '마음대로 써보자' 라는 마음이 있었다. '벌레'나 '마마' 같은 경우는 진표가 100%를 썼는데 욕 보다는 '어떻게 부모와 교사를 어떻게 이렇게 비유할 수 있느냐'라는 식의 반발을 샀다. 실은 좀 정리되지 않은 가사들인데, 갓 고교를 졸업한 이가 자신을 힘들게 한 선생님을 향해 갖고 있는 보복심이랄까 (웃음) 물론 진표는 한결 같이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만 자신의 어머니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봤을 때 아이들을 누르는 어떤 상징에 대한 표현 방식이 있었다. 내가 봤을 때에도 덜 세련됐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걸 좀 더 세련되고 시적으로 바꿨을 때는 그 느낌이 사라질 것 같았다. 나 역시 한 번 하고 싶은 얘길 써보자는 마음이 있었다. 그랬더니 교총과 각종 학부모 모임에서 판매 금지하란 요청이 쇄도하고, 신문에도 "사전 심의 철폐했더니 이렇게 가사를 쓰는가", "표현의 자유 이대로 좋은가" 이만하게 한 면 전체에 기사가 났던 기억도 난다.

김영혁 : '불면증'은 수록곡의 길이나 이윤정의 보컬 스타일만 봐도 작정하고 만든 곡 같다. 다른 테이크도 없었을 것 같은데?

이적 : 몇 번만에 녹음한 곡들도 있긴 한데, 불면증 같은 곡은 라이브로 했다. 연습 한 번 하고, 다들 모여서 리허설을 해보니까 웬지 계속 준비하면 오히려 잘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갑시다."하고 곧장 연주를 시작했는데 애초에는 그렇게 길게 연주 해야 겠다 그런 생각도 없었다. "될 때까지 녹음해 봅시다." 이런 것이었지. 그런데 "나나나..." 하면서 서로 '언제까지 하는거야' 생각하다가 눈길이 서로 맞으면서 곡이 딱 끝났는데 그러고 보니 곡이 상당히 길었다. 이걸 페이드 아웃 할까 하고 곡을 들어보는데 그 느낌이 나는 좋았다. 그래서 그대로 실었다.

김영혁 : 패닉 2집은 무삭제판-삭제판이 따로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적 : 처음 앨범이 나왔을 때 얘기는 아니고, 나중에 삭제판이 나왔었다. 판매 금지에 대한 위협도 있었으니까. 음반사에서는 여러 가지로 손해를 많이 본 상황이었기 때문에 '목에 칼이 들어와도 삭제판은 안된다' 라고 주장하기엔 좀 미안한 상황이었다. 왜냐면 갖은 외풍 속에서 우리의 주장을 지켜 줬으니까. 나중에 몇 개월 있다가 삭제판이라도 내봐야겠다라고 하길래 '그럼 마음대로 하세요'라고 했다. 나는 삭제판을 갖고 있지 않은데, 아무래도 요즘은 삭제판이 더 귀하지 않을까.

김영혁 : '그 어릿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를 녹음할 때 편곡도 많이 바꾸고, 리듬도 다양하게 섞었다. 이후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이 곡은 성장이나 실험에 대한 욕구가 정점에 달했던 시점에 만들어 것 같은데, 당시에는 무언가 원대한 포부가 있었을 것 같다.

이적 : 원대까지는 아니고 (웃음) 당시 그 곡이 여러 가지를 담기에 적당하게 나와서 국악, 현악 4중주, 재즈적인 시도... 그런 여러 가지를 많이 해보고 싶었다. 당시 그 앨범 녹음을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소유한 난장 스튜디오에서 했는데 천장이 가장 높기 때문에 그 곳을 택한 것이다. 사실 장비로 보자면 좋은 곳은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되는 장비도 많았고. 당시도 자동으로 기억되는 오토메이션 콘솔을 쓰던 때인데 그 스튜디오 콘솔은 기억이 아무 것도 안돼서 믹스할 때는 많은 사람들이 기계 앞에 붙어야 했다. 예를 들어 '자, 이제 2절 들어간다' 그러면 수동으로 기타 사운드를 올리고. 그런 식이었다. 당시 드럼사운드 디자인을 남궁연씨가 했는데 남궁연씨, 나, 진표, 엔지니어 2명 도합 다섯 명이 붙어서 한 번 틀릴 때마다 벌금 내면서 믹스를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곳을 택한 것은 그 홀에서 특이한 사운드, '어디서도 들어보기 힘든 생생한 사운드를 만들어보자' 그런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영혁 : 90년대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90년대의 가요 스타들이나 흐름은 어디론가 사라진 것 같은 기분도 든다. 패닉 4집으로 돌아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반가워 했지만, 웬지 새로운 세기에 여전히 뮤지션으로 남아 활동할 때 외롭다는 생각도 했을 것 같은데.

이적 : 너무 지난 세기의 가수로 생각하는 것 같다. (웃음) 김동률이나 토이가 나오면 맨날 보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익숙하다. 생각해 보면 계속 활동하는 사람들은 계속 한다. 예를 들어 이승환씨나 임재범씨 같은 가수들. 자의든 타의든 계속 활동하기 힘든 경우는 있다. 하지만 살아 남은 퍼센티지로 보면 외국이나 한국에 큰 차이는 없을 것 같다.

그런 것보다, 한국에서 가지는 음악의 영향력이나 무게감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이 음악 하는 사람으로써는 가장 안타까운 일이다. 시장이 작아졌다는 숫자적인 지표로도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더욱 마음 아픈 것은 음악이 굉장히 액세서리화 된 것이다. '언제 너의 음악을 보물과 같이 생각한 줄 아느냐?'라고 그러면 할 말이 없겠지만, 분명 음악가가 자의식을 갖고 노력 하는 걸 약간 냉소적으로 보는 분위기가 생겨났다. '음악은 히트를 시켜야지.' 이런 얘기를 예전에는 제작자들조차 노골적으로 표현하지 못했고 일반 대중들도 '이 가수는 생각이 좀 있어.' 라는 식으로 반응을 하는 부분도 있었는데, 이제는 모두가 하나가 되어 '뭐야, 히트를 시켜야지. 그러면 너 혼자 음반 내라.' 이렇게 얘기를 한다.

예를 들어, 인디에서 좋은 음반이 나와서 소개해주면 그저 너무 어려운 음악이고, 그럼 거기에 대해서 '잘 모르겠는데, 한 번 더 들어볼까' 이런 마음보다 굉장히 자신감 있게 무시하는 기류가 있다. '대중음악을 해야 하는데 너는 방향부터 잘못 되었다' 라는 고압적인 자세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 군데서 냉소와 비아냥을 듣다 보니 약간 진지하게 음악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무력해 진다. 그게 전의 세기(웃음)와 비교해서 2000년대에 음악 하는 사람들이 힘들어 지는 부분 같다.

김영혁 : 패닉으로 활동하던 초창기 시절로 돌아가 보면 너무나 많은 관심과 조명을 받았기 때문에 고민했던 부분도 있을 것 같다. 96년에 서태지가 은퇴를 하고 패닉 2집이 그것을 이어가는 상황이었는데, 당시 흔히 등장한 '포스트-서태지', '서태지 이후의 대중 음악을 주도할 인물.' 이런 평가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이적 : 우리는 사실 무언가 주도해 본 적은 없다. 예나 지금이나. 지나고 보면 괜찮았던 것 같고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게 다다. 패닉 1집이 60만장이 넘게 팔렸는데 그 해 10위 안에도 못 들었다. 이게 왜 잘 팔릴까 생각하게 만드는 앨범도 있었지만 내가 보기에 굉장히 좋은 음악도 많았고, 정말 많은 선수들이 다양한 음악을 하고 있었던 시대였다. 그래서 무언가를 주도하거나 '다음 세대엔 얘들이야.' 라는 평가를 받아본 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럴 능력도 안되어서 그런 생각을 하는 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저 내 자리에서 내 것을 하는 것이고 그걸 좋게 평가해 줘서 '당신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라고 하면 감사해야 할 일이겠지만 '한국 음악에 새로운 물꼬를 트겠다.' 이런 생각은 과거에도 지금도 없는 것 같다.

김영혁 : 사물을 대하는 태도, 삶을 바라보는 관점. 아무래도 90년대에 패닉 앨범을 만들던 시절과 지금과는 많이 다를 것 같다. 가정도 갖게 되었고. 자연인으로써 그 때와 지금 어떤 점이 바뀐 것 같은가. 지금 시대에 노랫말을 쓸 때 가장 큰 관심을 갖는 것들이 있다면?

이적 : 90년대만 해도 군사정권이 끝난 지 얼만 안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도 여러 가지 목소리가 많았고. 그 많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에 노래로써 그 목소리를 대변해야 겠다 혹은 발언해야 겠다 그런 건방진 생각을 하며 내가 만든 노래가 많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노래가 그렇게 정치적인 역할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라 생각한다. 노래가 아니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발언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어떤 의미에서건 진보한 것이라 생각을 한다. 그러다 보니 뭔가 거창한 것보다 사람의 감정, 상황, 어떤 순간에 드는 마음. 이런 것들을 노래로 어떻게 담을 것인가라는 생각을 한다. 내면적이면서도 더 일상적인 얘기에 관심이 많아졌다.

김영혁 : 아무리 사회가 과거에 비해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생각해 보면 90년대보다 더 악화된 것도 있는 것 같다. 이라크전과 같은 국제적인 이슈, 무엇보다 계속 악화되고 있는 환경 문제. 여전히 심각한 국내 사회의 병폐, 게다가 최근에 특히 정치적인 이슈도 많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상 속에서도 결국 이런 문제들과 마주하게 될 것 같은데?

이적 : 물론 그렇다. 그런 것 중에 굳이 지적하자면 한국의 인종 주의가 있겠다. 백인들에겐 전혀 차별하지 않지만 비 백인들에 대해선 가혹한 인종 차별. 인터넷 댓글 같은 걸 보면 신나치주의자들 같은 사람들이 한국에도 있구나 그런 생각도 한다. 예를 들어, 외국인 노동자 가운데 불법체류자가 있어서 문제라고 하면 이성적인 생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을 죽어버려야 한다.'란 댓글처럼 너무 많이 나가 버린 극우적인 인종주의가 인터넷 상에서 많이 보이는 것 같아서 그런 노래를 한 번 해봐야 겠다는 생각은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노래 만들면 아무리 다르게 표현해도 프로파간다(선전/선동)처럼 보인다. 노래에 직접적인 표현을 안 쓰고 은유와 상징을 쓰더라도 계몽 노래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미 과거에 '왼손잡이' 같은 곡을 통해 그런 식의 은유적 표현을 쓴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는 같은 방식의 표현은 잘 안 쓰게 된다. 하지만 앞으로 다인종주의가 되는 사회가 올 것이기 때문에 참으로 걱정스럽다. 지금 시골에는 다른 나라의 신부들이 1/3 정도 와 있다는데 나중에 그들의 2세들이 학교를 갈 때 그들이 모두 인종차별을 받는다는 걸 상상하면 걱정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걸 노래를 만드는 건 또 다른 얘기인 것 같다.

김영혁 : 패닉을 하던 시기로 돌아간다면 다시 같은 음악을 할 것 같은가?

이적 : 글쎄. 지금 자란 세대라면 하고자 하는 음악이 조금 다르겠지. 그 시절엔 그 음악들이 좋았다.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는 건 내가 음악을 할 때는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만든다는 것이다. 거기에 후회는 없다. 물론 내놨을 때 좋지 않은 건 어쩔 수 없겠지만. 내가 선택한 길에 대한 후회는 거의 안 하는 편이다.

김영혁 : 긱스와 패닉은 계속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인가?

이적 : 그렇긴 하다. 패닉은 얼마 전에 했으니까 다음에 언제 할 지는 잘 모르겠고, 실질적으로 긱스는 다시 할 가능성이 상당히 낮은 것 같다. 각자 여전히 교류는 하지만 개인적인 사정이나 그런 걸 종합해 봤을 때 좀 힘들지 않겠나 그렇게 생각한다. 긱스의 존재 유무와 상관 없이 여전히 펑크(funk)는 좋아한다.

김영혁 : 요즘 세대들이 음악을 소비하는 행태에 대해 거리감을 느끼지는 않는지? Mp3가 상용화 되고 소프트웨어가 변화하는 시기를 관통하며 음악을 해 온 입장에서, 혹은 소비자의 입장에서, 왜 우리의 음악 시장이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었다고 생각하는지 개인적인 견해를 듣고 싶다.

이적 : 처음에 이른바 불법 복제 파일에 대해서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했던 것, 한국이 전반적으로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낮다는 것, 음반사의 안일함이나 무지. 그런 것들이 순식간에 음악은 공짜로 듣는 것이란 단단한 믿음을 형성하게 한 것 같다. 사실 공짜로 들을 수 있는데 돈 주고 사는 건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소비가 아니다. 용돈 받아서 살아 가고, 누구나 돈에 쪼들리며 살기 때문에 꼭 돈을 주고 사야 하는 것이어야 소비를 한다. 이를테면 통화 연결음 같은 것은 CD와 비교를 해도 굉장히 비싼데 크게 이의를 제기하진 않는다. 사실 지금의 정서라면 거기에 대해서 폭동을 일으켜도 부족한데, 그렇게 반응하지는 않는다. 왜냐면 다른 옵션 자체가 적으니까.

그런데 음원을 듣는 데에는 너무나 광활한 옵션이 존재한다. 사실 통화 연결음의 경우처럼 만들어 놨어야 한다. 그런데 모든 질서가 다 무너진 다음에 제도를 만들려고 하니까 심리적인 저항이 만만치 않다. '그간 공짜로 퍼다 먹었는데, 여기다 돈을 붙이네.' 이렇게 생각을 한다. 0원과 비교를 하니까 10원도 비싸고 100원도 비싸다. 그게 소비자들이 과거에 비해 도덕적으로 해이해 졌다기 보단, 공짜가 당연한 상황으로 인식하게 한 제도적 뒷받침이 여러 해 동안 마련되지 않은 탓이 크다. 결국은 누가 봐도 불합리한 구조인데 누구도 선뜻 나서서 바꾸기 힘든 상황을 만든 것이다. 아마 제도적인 장치가 계속 만들어지면 한국도 온라인 음악 시장이 좀 더 합리적으로 이뤄지리라 본다. 하지만 불법 다운을 받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존재할 것이다.

그 무엇보다 음악에 대한 소비형태가 바뀌면서 아쉬운 것은 앨범 형태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확률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테크놀로지가 예술의 형식과 내용을 바꾸는 셈인데, 예를 들어 내 음반에는 절대로 싱글 커트를 할 수는 없으나 절대로 이 음반에 빠질 수 없는 곡들이 다수 있다. 그런데 그 곡을 '어디 가서 밀자, 뮤직 비디오 찍어서 홍보하자.' 이렇게 할 수 있는 곡들은 아니라는 걸 잘 안다. 그런데 이런 곡들이 지금의 상황에선 의미가 없어진다. 앨범을 안 만들고 두 달이나 석 달에 한 번씩 싱글을 만들 때, 어떻게든 그 곡이 다운로드 100위 안에 들어가야 제작비라도 건질 수 있을 테니까 모든 사람들이 결국은 히트에 목을 걸게 되는 상황이 된다. 음악적인 평가는 무의미해 진다. 심지어 어떤 사람이 타협을 해서 타이틀 곡은 대중친화적인 곡을 쓰고 나머지 곡은 만들고 싶은 곡을 만드는 것조차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 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더 높은 순위로 올라갈까를 생각해야 하니까 음악이 더 편협해지고 장르는 소위 안전빵의 세계에서 결정된다. 모바일 차트의 상위권 곡들이 모두 비슷비슷한 곡이고, 몇 명의 작곡가들이 주도하게 되는 것 역시 검증된 안전한 방법으로 가려 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 게 안타깝다.



김영혁 : 정부나 음반사가 못한다고 하면 결국은 음악가가 해결해야 할텐데, 유통방법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은 있는가?

이적 : 사실 라디오헤드가 하는 방식을 나도 몇 년 전부터 떠들고 다닌 적이 있는데(웃음), 이를테면 내 홈페이지에서 10원 내고 싶은 사람은 10원 내고, 좋게 생각해 주는 독지가는 100만원 내고.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은 있다. 그런데 그것도 라디오헤드 정도는 되야 의미가 있겠다. 전세계의 수많은 라디오헤드 팬들이 다 한 번씩 찾아 가보지 않겠는가. 내가 봤던 자료에 따르면 그들이 평균 6~7천원 지불했다는데 유통비도 안 드는 상황에서 그 정도면 선방한 것이다. 그리고 결국 CD를 내서 판매까지 했으니까. 그런 관심을 못 받는 경우는 결국 이를 모를 쇼핑몰처럼 되어서, 결국 자기 음악을 알리기 위해 멜론 같은 대형 유통망과 조인하게 되는 상황을 맞이할 수 밖에 없고, 결국 달라지는 것이 없지 않겠는가 라는 고민 속에 있다.

김영혁 : 단편집은 출간되었고 뮤지컬을 만들고 싶어 한다는 얘기도 들은 것 같다. 지금 당신을 가장 흥분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이적 : 뮤지컬도 만들어야 하는데, 계속 뒤로 밀리고 있다. 이것저것 다양하게 하면서 스스로에게 에너지를 주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책도 한 권 더 쓸 것 같고, 음반도 천천히 준비하고 싶고, 지금 하는 라디오도 재밌다. 대본도 없고 선곡표도 없어서 교감하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진행하는데 무엇보다 좋은 음악을 청취자 뿐 아니라 나도 들을 수 있어서 좋다.

김영혁 : 만약 사람들에게서 가장 오해 받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이적 : 어떤 사람에게는 중요한 뮤지션일 수도 있다. 일례로 이런 차트 만들면 2장이나 들어가니까 '인정 받고 있구나' 라고 생각도 때론 하지만 그러다가도 어디 가서 '이정 아니냐?' 뭐 그런 얘기도 듣고, 오래된 옛날 가수로 인식되기도 하니까 모두들 각자 생각이 다른 것이다. '다행이다' 라는 곡을 발표하면 어떤 사람은 '맘에 다가와서 좋다.'라고 하지만 '이적이 왠 사랑 노래냐? 실망이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오해가 뭐고 이해가 뭔지 모를 정도로 다 다르게 보니까, 어느 것이 진짜이고 가짜라고 주장하고 수정하고 싶은 부분은 없다. 결국 모든 것은 약간의 곡해와 오해 속에서 해석 되는 것이니까. 나는 내 갈 길을 가는 것이다.

김영혁 : 닐 영처럼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런 저런 실험을 하는 가수도 있고, 브루스 스프링스틴처럼 언제나 한결 같은 가수도 있다. U2처럼 잠시 외도를 하다가 자신의 궤도로 돌아오는 이들도 있고. 여러가지 부류가 있겠는데, 2030년 정도 쯤에 당신은 어떤 음악을 하고 있을까. 훗날 패닉 혹은 이적이란 이름으로 검색을 했을 때 당신 이름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어 있기를 바라는가?

이적 : 괜찮은 음악을 했던 팀, 자기 음악을 했던 사람. 듣는 사람들에게 꽂히건 안 꽂히건 간에. 음악적으로 20~30년 후는 모르겠고, 결국 하고 싶은 음악은 장식이나 편곡적인 혹은 사운드적인 기발함보다 지금 이런 데서 기타 하나 들고 노래 해도 좋은 음악이다. 소극장 콘서트를 계속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그렇게 해도 좌중을 집중시킬 수 있는 가수, 뮤지션이 되고 싶다. '정말 이런 아이디어가 어디서 나와?' 이런 재기 발랄한 음악보다는 자연스러운데 지루하지 않고 울림을 주는 음악. 그게 사실 굉장히 어렵다. 나는 그리로 가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장소 : SBS 라디오 스튜디오
진행 : 김영혁(대중음악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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