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설마’하던 일이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러시아 대표팀 감독 거스 히딩크의 명함이 ‘러시아 대표팀 감독 겸 첼시 감독’으로 바뀌는 것이 기정사실화 된 것이다.

유럽 현지 시간으로 9일 루이스 펠리피 스콜라리 감독을 전격 해고한 첼시는 히딩크 감독과 면담을 가졌고, 그에게서도 “돕고 싶다”는 의사를 얻어냈다. 그리고 10일 러시아 축구협회는 올 시즌 말까지 남은 3개월 동안 대표팀 감독과 첼시 감독 겸직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첼시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히딩크 감독과 협상을 갖는다”며 히딩크 본인의 최종 수락만이 남았음을 알렸다.

히딩크는 과거 PSV 에인트호벤, 호주 대표팀 감독 겸직에 이어 높은 수준의 대표팀과 최고 수준의 클럽 팀을 동시에 맡는 유례 없는 투잡(Two job)에 다시 한번 도전한다. 일에 대한 그의 경이적인 열정과 의욕, 독이 든 성배를 드는 모험을 피하지 않는 무한 도전은 다시 세계 축구 팬들의 눈길을 히딩크라는 인물에게 향하게 만들었다. 앞으로의 3개월 동안 프리미어리그에서 히딩크가 보여줄 행보는 무엇일까? 과연 세계 최고의 리그, 그 중에서도 최고 클럽의 위기를 성공으로 돌려야 하는 그가 특유의 어퍼컷 세레머니를 날릴 수 있을까?

바꿔야 할 것은 성적만이 아니다

족집게 강사 히딩크에게도 3개월은 한 팀을 바꾸기엔 부족한 시간이다. 더욱이 지금 첼시에서 히딩크가 바꿔야 할 것은 4위로 쳐져 있는 프리미어리그 성적만이 아니다. 부진이 시작된 지난 11월 이후 쌓여온 선수단 내의 불화와 위화감, 자신감 결여 등의 심리적 문제와 싸워야 한다.

홈 불패의 제국 첼시가 무너진 것은 외부의 문제가 아닌 내부의 균열 때문이었다. 데쿠로 대표되는 브라질, 포르투갈 출신 선수들의 기용을 놓고 벌어진 기존 선수들과 스콜라리 감독의 갈등, 디디에 드로그바와 알렉스 등의 이적설이 첼시를 한바탕 뒤흔들었다. 강한 규율과 절대적인 원칙을 앞세워 팀을 사로잡는 데 실패한 스콜라리는 월드컵 우승의 명장이라는 칭호가 무색하게 시즌 중 해고라는 치욕을 맛봤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첼시에겐 히딩크가 최적의 선택이다. 첼시의 선수층은 2위 리버풀이나 3위 애스턴 빌라에 비해 두껍다. 개인 기량 면에서도 우위에 있다. 축구 심리학이라 표현될 정도로 선수들을 쥐었다 풀었다 하는 히딩크가 첼시 선수들의 정신적 아노미를 해결한다면 성적은 자연스럽게 올라갈 수 있다. 경험과 기량이 최고 레벨이 비해 한참 떨어졌던 한국, 호주, 러시아, PSV 시절보다 더 빨리 처방을 내릴 수 있다는 얘기다.

챔피언스리그 올인 전략

현역 감독 중 대표팀과 클럽을 가리지 않고 단기전에서 최고의 능력을 보여주는 이는 히딩크다. 세 번의 월드컵과 유로 2008은 물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수 차례 증명해 보였다. 상대 팀을 약점을 파고드는 전략과 전술, 자신의 팀의 사기를 올리고 상대를 와해시키는 심리전까지 그의 무기는 다양하고 또 절대적인 힘을 지녔다.

냉정한 시각에서 현재 첼시는 프리미어리그 우승 경쟁에서 멀어진 상태다. 선두 맨유와는 승점 7점 차다. 맨유가 1경기를 덜 치른 상황이기에 사실상 10점 차로 봐도 무방하다. 이미 맨유와의 두 차례 리그 맞대결도 끝난 만큼 차이를 좁히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히딩크가 이끄는 첼시의 현실적 목표는 16강 토너먼트 시작을 눈 앞에 둔 챔피언스리그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무리뉴 시절 프리미어리그 두 시즌 연속 제패를 맛본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의 숙원도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다.

지난 시즌에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까지 가 본 첼시 선수들의 경험에 히딩크의 마법이 더해진다면 단기전에서만큼은 120% 힘을 발휘할 전망이다. 첼시의 16강 상대도 바르셀로나나 인터 밀란보다는 부담이 덜한 유벤투스다. 1차전이 열릴 2월 25일까지는 시간이 많지 않고 2차전을 원정으로 치러야 한다는 장애물이 있지만 히딩크 특유의 전략적 경기 운용이 빛을 발한다면 고비는 넘길 수 있다.

단기 알바, 2010년 이후를 위한 포석인가?

아브라모비치와 첼시, 히딩크와 러시아 축구협회는 현실이 되기 어려울 것이라던 일을 실제 상황으로 만들어냈다. 세계적인 감독이 3개월 간 한시적으로, 그것도 이미 월드컵 진출을 목표로 하는 대표팀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 최고 레벨의 클럽을 지휘하게 된 것이다. 2005년에도 이런 이중생활을 보낸 적 있는 히딩크였지만 당시는 PSV를 맡고 있는 상황에서 A매치 기간에만 호주 대표팀에 나가는 상황이었다. 히딩크 감독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첼시가 아닌 다른 팀이었다면 거부했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첼시의 구단주이자 자신의 후원자인 아브라모비치와의 관계 때문에 이 이례적인 상황을 수락했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히딩크의 이런 ‘초단기 알바’가 과연 3개월의 동거로만 끝날까? 현재 영국 언론들은 첼시의 차기 감독 시나리오로 ‘남은 시즌을 히딩크가 맡고, 다음 시즌부터 AC 밀란의 카를로 안첼로티가 오게 될 것이다’라고 내다보고 있다. 올 하반기부터 남아공월드컵 예선에만 전념해야 하는 히딩크와 올 시즌까지 밀란과 계약되어 있는 안첼로티의 상황을 볼 때 이상적인 바통 터치다.

단 지금부터 시작될 3개월의 상황이 이 시나리오를 통째로 바꿀 수도 있다. ‘초단기 로쏘네리’로 끝날 줄 알았던 데이비드 베컴이 뛰어난 기량으로 밀란으로 하여금 완전 이적에 집착하게 만들었듯이, 3개월 동안 히딩크가 불가능할 것 같은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의 성과를 이룬다면 말이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을 끝으로 러시아 대표팀과의 계약이 끝나는 히딩크 역시 과거 레알 마드리드에서 이루지 못했던 빅 클럽에서의 성공을 자신의 현역 감독의 마지막 성공으로 꿈꿀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 3개월은 히딩크에게 2010년 이후의 목표를 위한 작지만 큰 포석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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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생 히딩크 요즘 극도의 경제난으로 투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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