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퍼니 하더웨이(34·올랜도)가 올랜도 매직으로 복귀했다.
하더웨이는 지난 1993년 NBA드래프트 전체 3순위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지명됐다. 하지만 하더웨이는 곧바로 올랜도로 트레이드됐다. 올랜도는 전체 1순위로 미시건 대학 출신의 크리스 웨버를 지명했지만 샤킬 오닐과 역할이 겹친다는 이유로 웨버보다는 하더웨이를 선호하고 있었다.
웨버는 1993년 드래프트 당시 최고의 선수였다. 올랜도는 당연히 웨버를 지명했고 사전합의에 따라 웨버를 골든스테이트로 이적시켰다.
골든스테이트는 웨버를 영입하기 위해 하더웨이의 계약권리와 향후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 3장을 포기해야만 했다. 1990년대 초반 미국대학농구의 인기를 독차지했던 '팹 파이브(fab five)'의 리더 웨버의 가치는 그 정도로 대단했다.
하더웨이는 93-94시즌 현 시카고 불스 감독인 스캇 스카일스와 함께 백코트를 형성, 1-2번 포지션을 오가며 성공적인 데뷔를 치렀다. 하더웨이는 94-95시즌부터 주전 포인트가드로 발탁, 평균 20.9점 7.2어시스트 4.4리바운드를 기록하며 NBA 최정상급 선수로 발돋움했다.
1995년 오닐과 함께 팀을 NBA 파이널로 이끌었던 하더웨이는 95-96시즌 평균 21.7점 7.1어시스트 4.3리바운드로 최절정의 기량을 과시했다. 무엇보다 95-96시즌은 하더웨이가 자신의 진가를 보여준 최고의 한 해로 기억되고 있다.
당시 오닐은 발 부상으로 11월 출전이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하더웨이의 역할이 더욱 중요했다. 하더웨이는 11월 한달동안 평균 27.0점 6.6어시스트 5.8리바운드를 기록, 팀을 13승2패로 이끌며 팬들과 미디어를 경악시켰다. 1996년 여름, 오닐의 헐리우드행을 두고 올랜도 팬들이 크게 근심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1995년 11월 하더웨이가 보여준 활약 때문이었다.
하더웨이는 2시즌 연속 NBA '베스트5'로 선정됐고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국가대표로 선발돼 금메달을 손에 넣는 등 전성기를 보냈다. 오닐 이적 후 첫 시즌이었던 96-97시즌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는 팻 라일리 감독이 이끄는 마이애미 히트를 상대로 2경기 연속 40득점 이상을 기록하기도 했다. 마이클 조던을 포함한 그 누구도 수비를 강조하는 라일리 감독의 팀을 상대로 2경기 연속 40득점을 기록했던 적이 없었기에 더욱 돋보이는 업적이었다.
하지만 1996년 11월에 처음 당한 무릎부상은 두고두고 하더웨이를 괴롭혔다. 하더웨이는 1997년 2번째 무릎수술을 받았고 이후 조금씩 전성기 시절의 기량을 잃기 시작했다. 1999년 여름 피닉스 선즈로 이적한 하더웨이는 제이슨 키드와 호흡을 맞췄고 미디어는 키드-하더웨이 콤비를 '백코트2000'이라 부르며 기대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하더웨이의 계속된 무릎부상 재발은 결국 그의 경력을 망쳐놓았다.
이번 트레이드를 통해 부상으로 화려한 경력에 흠집을 낸 두 선수가 만났다는 점 역시 흥미롭다. 올랜도는 이미 발목부상으로 지난 5시즌동안 이렇다할 활약을 펼치지 못했던 그랜트 힐을 보유하고 있다. 하더웨이와 힐은 1990년대 중반 최고의 수퍼스타이자 마이클 조던의 뒤를 이어 21세기 NBA를 이끌어나갈 미래로 평가받았던 선수들이었다.
하더웨이가 올시즌 7년만에 등번호 1번이 새겨진 올랜도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하더웨이는 무릎부상 재발로 인해 올시즌 4경기 출전에 그쳤고 지금까지도 재활훈련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출전여부를 떠나 1990년대 중반 '올랜도 돌풍'을 이끌었던 하더웨이의 복귀는 올드팬들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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ㅉㅉ 멀모르는 기자.. 페니를 대꼬와서 내년에 샐러리캡1500만불정도가 빈다 거기에 힐마저 2007년에 은퇴하면 3000만불은 거저남긴다 ...
그 샐러리캡으로 모할까.. 슈퍼스타 2~3명은 낚을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