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야유를 받은 선수였습니다. 거친 입담으로 유명했던 릭 배리조차 그런 야유는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선배 백인 센터였던 데이브 코웬스처럼 온몸을 던졌습니다. 차이점은, 코웬스는 볼을 향해 몸을 던졌지만 그는 상대 선수를 향해 몸을 던졌다는 것입니다.

그는 점프하려는 상대 선수의 가슴에 팔꿈치를 날렸습니다. 만약 상대가 뿌리치고 점프하면 허리를 밀어 거꾸로 떨어뜨렸습니다. 고통스러워하는 상대 선수 앞에서 시치미를 떼며 특유의 비웃음을 날렸습니다.

그는 원정팬의 야유를 받는 것을 크게 싫어하지 않았지만, 홈팬의 환호를 받는 것을 크게 좋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사인을 받으러 온 소년 팬에게 “꺼져!”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는 시합중에 상대 선수들을 증오했지만, 그렇다고 그 외의 시간에 그들을 용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시합이 끝나고 웃으며 인사를 하러 오는 상대 선수에게 “시합 끝났다고 친한 척 하면 다음 시합 때 날려버리겠어”라고 내뱉었습니다.

그는 동시대 선수들 중 가장 많은 슈퍼스타에게 주먹을 맞은 선수였습니다. 로버트 패리쉬, 밥 레이니어, 래리 버드, 그리고 찰스 바클리에게 얻어맞은 선수는 많지 않습니다.

그는 상대 팬 뿐 아니라 상대 선수에게서도 평판이 좋지 않았습니다. 조던이 은퇴했을 때 리그의 선수들은 슬퍼했지만, 그가 은퇴 선언을 하자 선수들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조던이 ‘농구의 신’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때 그가 얻은 별명은 ‘어둠의 왕자’, ‘노상강도’, ‘살인자’였으며, 조던이 ‘His Airness'라는 칭호를 들었을 때 그가 들은 칭호는 ’His Heinous(가증스러운)' 이었습니다.

그는 상대팀에게는 두려움의 상징이었지만 동료에게는 승리의 상징이었습니다. 데니스 로드맨은 그의 모든 것을 흡수하여 리그 최강의 수비수가 되었습니다.

그는 평범한 점프력은 어깨를 이용한 몸싸움으로, 느린 풋워크는 한발 빠른 예측력으로, 페인트존 공격능력 부재는 부단한 중거리슛 연마로 각각 극복해낸 대기만성형의 선수였습니다.

리그 역사상 최악의 다크 스타, 자신의 모든 평판과 승리를 바꾼 선수. 그가 바로 피스톤즈 40번 빌 레임비어입니다.


낙제생 시절

빌 레임비어는 1957년 5월 19일, Clarendon Hills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꼬마 빌 역시 차도나 주차장에서 슛을 던지며 NBA 선수의 꿈을 키웠습니다.
하지만 리그에 입단하기 전 그의 학창 시절은 말썽꾸러기 낙제생 자체였습니다. 그는 노틀담 대학 1학년 때 성적 불량으로 제적당한 후 전문대학에서 두 학기 동안 학점을 보충해야 했습니다. 농구 실력 역시 별 볼일 없어서, 대학 마지막 두 학년 동안의 평균 기록은 7.3 득점과 6.0리바운드였습니다.
레임비어는 1979년 드래프트의 3라운드 65번픽으로 클리블랜드에 입단했지만 운동능력 떨어지는 불량 선수는 트레이닝 캠프에서 큰 눈길을 끌지 못했고, 결국 이탈리아 리그의 Pinti Inox of Brescia 팀과 계약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화위복이 되었는지, 한 시즌을 주전으로 출장한 레임비어는 평균 21.1득점과 12.5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당시 이탈리아 축구 리그를 보고 팔꿈치 사용법을 깨달았다는 사실은........없습니다. ^^;;


악동, 자동차의 도시로

클리블랜드로 돌아온 레임비어는 첫해 주전으로 뛰며 평균 9.8득점과 8.6리바운드를 잡아내는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깨끗한 플레이를 원했던 클리블랜드 프론트는 레임비어에게 많은 출장시간을 주지 않았고, 그를 눈여겨보고 있던 리빌딩 팀 디트로이트는 케니 커, 필 허바드, 폴 모케스키와 두 장의 드래프트 픽을 내주고 레임비어를 데려옵니다.
디트로이트가 이 정도의 출혈을 감수한 이유는 그해 입단한 인디애나대 출신의 슈퍼 루키, 아이재이어 토마스를 인사이드에서 도와줄 선수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타고난 골목대장인 둘을 영입함으로써, 디트로이트는 챔피언 등극을 위한 10년 대계의 주춧돌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당시 동부 컨퍼런스를 지배하고 있던 보스턴이나 필라델피아, 밀워키에게 짓밟혀가며, 토마스와 레임비어는 리그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져나갔습니다. 토마스는 동부 최고의 포인트가드가 되었고 레임비어는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평균 15~18점에 두 자릿수 리바운드를 뽑아내는 리그의 대표적인 수비형 센터로 성장했습니다.
1985-86 시즌, 레임비어는 평균 13.1 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모제스 말론의 5시즌 연속 리바운드왕 행진을 저지합니다. 1982년부터 90년 까지 시즌 총 수비리바운드 1위는 레임비어의 것이었습니다.
이 시기 레임비어는 네 차례나 올스타에 뽑히지만, 그의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팬들의 반응은 최악이었습니다. 더러운 파울을 저지르고도 심판의 눈을 교묘하게 빠져나갔기 때문에(82년 이후 그의 평균 파울이 4개를 넘어간 시즌은 한 해도 없었고, 오히려 파울 지적이 줄어갔습니다) 그의 이미지는 더더욱 나빠져 갔습니다.
레임비어는 그런 코트에 싸우려고 들어오느냐는 팬들의 비난에 대해 인터뷰에서 코웃음을 치며 한마디 던졌습니다.

“나는 싸우지 않는다. 그냥 엿먹이고 내 갈길 갈 뿐이다.”

동료 토마스는 한술 더 떴습니다.

“팬들이 그를 싫어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팬들은 그를 싫어하는 것을 좋아하는 거다. 자고로 사랑과 증오는 표리 관계 아니던가. 솔직히 말하면, 내가 빌과 모르는 사이였다면 나 역시 빌을 좋아하지 않았을 거다.”

.... 이건 80년대 식 찌질이 옹호론일까요?


Struggle for the Top

토마스와 레임비어, 두 사람을 중심으로 서서히 강해져간 디트로이트는 마침내 1986-87 플레이오프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디펜딩 챔피언인 보스턴과 만나게 됩니다. 버드-맥헤일-패리쉬의 역대 최강 프론트 라인에 레임비어-마혼-샐리-댄틀리의 악당 빅맨으로 대항한 디트로이트는 5차전까지 홈게임을 승리하여 디트로이트가 3승 2패로 리드하고 있었습니다.
보스턴 가든에서 열린 6차전, 디트로이트는 6차전에서 시리즈를 끝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보스턴 같은 레전드 팀과 7차전을 해서 좋을 게 없었기 때문이죠. 게임 종료 5초전, 디트로이트는 한 점 앞서고 있었고 공격권마저 가지고 있어 결국 디트로이트가 파이널에 갈 것으로 보였습니다.
바로 이때, 지금도 명장면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 슈퍼 플레이가 나왔습니다.
토마스는 사이드라인에서 레임비어에게 인바운드 패스를 준비하고 있었고, 보스턴의 래리 버드는 자유투라인 근처에 서있었습니다. 그런데 토마스가 패스를 하려는 순간 버드가 쏜살같이 레임비어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결국 버드는 레임비어가 볼을 잡기 전 순식간에 공을 가로챘고 동료 데니스 존슨에게 패스했습니다. 존슨은 침착하게 레이업을 성공시키고 순식간에 승부가 108-107로 뒤집혔습니다. 남은 시간은 1초, 토마스-레임비어 콤비의 통한의 실책이었죠.
결국 시리즈를 마무리 짓지 못한 디트로이트는 7차전에서 패배, 토마스와 레임비어의 첫 파이널 진출은 다음 시즌으로 미루어졌습니다.

절치부심한 1987-88 시즌, MVP 조던이 이끄는 시카고와의 끈질긴 악연을 승리로 장식한 디트로이트는 마침내 파이널에 진출하여 디펜딩 챔피언 레이커스와 시리즈를 치르게 됐습니다. 배드보이즈는 최선을 다했지만, 토마스의 7차전 부상 투혼에도 불구하고 제임스 워디의 대량 득점을 막지 못해 레이커스의 2연패를 바라봐야 했습니다.


수비농구의 시대를 열다

1988-89 시즌, 마침내 배드보이즈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레임비어의 득점과 리바운드는 13점 9리바운드로 줄었지만, 그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릭 마혼이 6.9리바운드, 제임스 에드워즈가 7.3리바운드, 존 샐리가 7득점 5리바운드, 그리고 레임비어의 직계 제자인 3년차 데니스 로드맨은 9.0득점 9.4리바운드와 리그 1위인 59.5%의 야투 성공률을 기록했습니다.
토마스의 곁에는 17.2득점에 조던을 가장 잘 막던 ‘나홀로 신사’ 조 듀마스가 함께 했고, 13.8득점을 기록한 백업 가드 비니 존슨과 함께 백코트 50득점을 합작했습니다.
그리고 거친 이들을 팀으로 묶은 것은 오랜 시간 배드보이즈를 지도한 감독, 척 데일리였습니다.

그들은 NBA에 수비 농구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배드보이즈는 100.8실점과 44.7%의 야투 허용율을 기록하며 각각 리그 2위를 차지했습니다. 100점이나 실점했는데 뭐가 수비농구냐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의 순위에 이 기록을 대입해보면 꼴찌에서 8번째 수준이고 1위 멤피스의 88점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은 실점이죠. 하지만 당시에는 속공 중심의 농구가 펼쳐졌고, 슛 시도가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44%의 야투 허용율은 하프 코트 오펜스와 지역방어가 주로 쓰이는 오늘날과 비교해도 준수한 기록이죠.
그해, 듀마스와 로드맨이 올 디펜시브 퍼스트팀에 뽑힌 피스톤즈는 시즌 63승을 기록했고, 재작년에 통한의 패배를 안긴 보스턴과 밀워키를 스윕한 후 동부 파이널에서 시카고에 2-1로 뒤지다 세 게임을 연속으로 승리하는 괴력을 보이며 파이널에 진출, 다시 한번 레이커스와 맞붙게 되었습니다. 햄스트링 부상으로 바이런 스캇과 매직 존슨을 잃은 레이커스는 듀마스를 전혀 막지 못했고, 피스톤즈는 레이커스를 스윕하며 토마스-레임비어의 첫 우승을 일궈내게 됩니다.

이듬해인 1989-90 시즌, 시카고를 다시 한 번 주저앉힌 배드보이즈는 포틀랜드를 맞아 4-1로 승리하며 2연패를 이룹니다. 레임비어는 2차전에 무려 6개의 3점슛을 성공시키며 역대 타이 기록을 수립했습니다.


거인과의 이별

세월이 흘러 토마스와 레임비어도 나이를 먹고 부상에 시달렸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등을 몇 년 전의 배드보이즈 처럼-강력한 수비와 득점력 뛰어난 가드를 앞세우는-떠오르는 젊은 황소가 받아대기 시작했죠. 1990-91 시즌 플레이오프, 세 시즌 연속 디트로이트에게 짓밟혔던 황소들은 마침내 배드보이즈를 스윕하며 첫 우승의 감격을 맛보았습니다. 악동의 시대는 저물고 있었습니다.

1993-94 시즌, 아버지 같은 데일리 감독과 아들 같은 로드맨을 떠나보내고 등과 무릎이 만신창이가 된 레임비어는, 역시 만신창이가 된 입단 동기 토마스와 같은 해에 은퇴를 발표합니다. 상대팀 선수들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냥 말이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 그랬습니다.

젊은 시절 레임비어를 때려 마스크를 쓰게 한 찰스 바클리는 레임비어에게 직접 편지를 썼습니다.

“친애하는 빌,

엿먹어!

당신이 사랑하는 찰스 바클리!”

데뷔 이래 항상 레임비어를 상대하며 코트에 처박혀야 했던 시카고의 호레이스 그랜트는 레임비어가 은퇴한 날, Detroit Free Press에 광고를 냈습니다

“오늘밤 우리 집에서 성대한 파티를 열겠습니다. 누구든지 오세요!”

하지만 바클리나 그랜트가 레임비어의 캐리어 기록을 보면 경의를 표할 지도 모릅니다.
레임비어는 디트로이트의 통산 리바운드 1위(9,430개)이며, 통산 1만득점-1만리바운드를 기록한 19번째 선수입니다. 그의 통산 3점 성공율은 32.6%에 달하며, 수많은 부상을 당하면서도 685게임을 연속해서 출장할 정도로 근면한 선수였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디트로이트 구단은 캐리어 대부분을 디트로이트의 승리를 위해 헌신한 레임비어를 1995년 영구결번 처리했습니다. 레임비어는 현재 WNBA의 디트로이트 쇼크 감독을 맡아 팀을 파이널에 올리며 지도자로써의 자질도 인정받고 있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하라

농구선수를 꿈꾸는 꼬마라면 누구든 마이클 조던이나 샤킬 오닐, 매직 존슨이나 카림 압둘-자바같은, 관중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으며 많은 득점을 올리는 선수가 되는 것을 상상할 겁니다. 5살짜리 꼬마가 아침에 “엄마, 어젯밤 꿈을 꿨는데요, 제가 NBA에서 살인자라는 소리를 듣는 선수가 됐어요. 가는 곳마다 야유를 받았어요.”라고 말하는 모습을 상상하긴 힘들죠.
하지만 레임비어는 NBA 감독이라면 누구든지 함께 뛰는 것을 꿈꾸는, 팀에게 소금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는 대학 시절에도 전혀 주목받지 못했고, NBA에도 직행하지 못했으며 할 줄 아는 거라고는 몸싸움과 중거리슛 밖에 없었지만, 어떻게 하면 팀이 이길 수 있는지 아는 선수였고, 아는대로 행동했습니다. 자신의 모든 평판을 희생해가면서 말이죠. 레임비어는 야유를 얻었지만, 디트로이트는 레임비어가 가져다 준 두 개의 트로피를 얻었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자신이 갈 길을 깨닫고 그 길을 흔들림 없이 가기는 아주 힘듭니다. 레임비어는 자신의 농구인생이 갈 길을 깨닫고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옮긴, NBA가 낳은 거인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선수 경력을 마무리하던 무렵, 캐리어를 통해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대한 레임비어의 대답으로 글을 마칠까 합니다.
“센터로 한정해 생각하면, 나는 모제스나 카림이 될 수 없다. 나는 나머지 선수들 중 최고가 되려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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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수 점프력이 감독보다도 못한다더군.. 그런데 수비리바운드1위...
운동능력이 운동으로 먹고사는 선수가 맞나 싶을 정도로 형편없는선수..
하지만 슈퍼 근성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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