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 오브 듀티 4>, 새 시대의 전쟁 해석

  
  






<콜 오브 듀티 4>, 새 시대의 전쟁 해석

인피니티 워드의 <콜 오브 듀티> 프랜차이즈가 비디오게임 업계에서 상징해온 것은 사실 상상보다 거대한 것이다. 2차대전 관련 상품 시장들 속의 유명하고 또 상징적인 아이템 몇 개를 몽타주처럼 배열하고 플레이 가능한 레벨로 재현해온 이 시리즈의 속성은, 사실 현재의 비디오게임 타이틀 대다수가 소비자에게 익숙한 시퀀스들을 다시 답습하여 되팔아내려는 그 무서운 경향에 다들 몸 담고 있음을 보여주는 아주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것은 수요층의 입맛에 지금 막바로 당기는 것들 따위를 광대하게 살피고 보기좋게 모아 담아 상품의 수명을 편하게 유지하는 MTV 채널과 뮤직비디오들의 감성에 가깝지만, 그렇게 열광에 편승할 뿐인 대부분의 젊은 컨텐츠가 그렇듯 뭔가 또다른 담론을 낳을 의지나 혹은 가망성은 희박해보인다. 짧은 역사의 비디오게임 업계는 대중 앞에 새로운 것을 창조함에 있어 자기만의 방식을 탐구하는데 열중해야 하지만, 다들 그렇게 딱 청소년의 롤리팝같은 뮤직비디오들의 방식을 모방하는데 그친다면 그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아주 나쁜 습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 나온 <콜 오브 듀티 4 : 모던 워페어>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그들이 이뤄낸 성장에 대해 사실 많은 부분 놀랐음을 감출 수 없다. 시리즈 중에서도 비주얼 연출과 오디오 구성까지 거의 전폭적으로 표현 기법의 진보를 이뤄낸 이 네번째 작품이 아주 세련된 광택의 현대전으로 테마를 옮긴 후 보여주는 세계의 구조는 여전히 몇 갈래의 화자로부터 몇 가지 선별된 시간과 배경을 스테이지로 엮는 방식를 고수하는 것이지만, 인피니티 워드는 이제 그 화법을 구사함에 있어 자신들만의 독자성을 서명해낼 수 있는 경지에 도전하고 있음을 선포한다. 이들은 방법을 바꾸지도 않았으며, 그 본질이 달라졌다고 하는 것은 거의 거짓말에 가까운게 사실이다. 이 게임의 전체는 톰 클랜시의 <썸 오브 올 피어스>처럼 핵무기 위협 따위를 다룬 포스트 냉전의 테크노스릴러를 벤치마킹하고, 그런 것들을 다루는 영화와 문학들 속의 관습적인 아이템들을 캐릭터화하여 뻔하게 구성하고 꾸미는 것이다. 한정된 시간대를 배경으로 참고하기 좋은 영화 명작선 몇 편으로 선명히 압축할 수 있었던 2차대전에 비해 그 형태는 희미해졌어도, 이들은 여전히 전쟁이라는 '현실'이 아니라 선대에서 미리 정형화된 '미디어'에 집착하며 외형적으로 결국 또 한편의 아류 픽션에 심취한다. 하지만 이제와서 뒤늦게 느낀 것이 있다면, 인피니티 워드는 이제 더이상 전쟁에 대한 현실적인 비전 같은건 뭐가되든 상관없다는 쪽을 선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태도로는 보통 비윤리적인 쪽으로 새어나갈 가능성이 높지만, 이들은 사실상 현실에 대한 호기심을 미디어를 통해 해결하고 더욱이 그곳에서 자기가 원하는 현실만을 모아서 골라보고 싶어하는 현대의 그 어쩔 수 없는 삶의 방식에 타협하는 것으로도 어쩌면 자기들만의 전쟁 현실을 그리는데 당당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지를 이번 4편에서 강도 높게 밀어붙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껏 과장되었던 대사마저 잠시 절제한채 아주 섬뜩하게 AC-130H 건쉽의 원격 열감지 화상을 재현하는 부분에선 유저로서 그 디테일에 놀라면서도 사실상 폭격의 통쾌함보다는, 너무나도 간단해서 마치 현실 외의 제 3자 입장에서 적을 요격하며 비디오게임의 일종으로 해석될 어느 '미디어'의 경계선으로 들어선듯한 지금의 그런 전쟁기술과 영상자료를 더이상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야할지 선뜻 결정할 수 없는 독특한 경험을 만든다. 그걸 어떤 의도로 그렸는지 투명하지 못한 상황에서 개발자의 표현 자체에 대한 시선이 엇갈릴 수는 있겠지만, 현실을 복사해야하는 극사실주의가 그 목적을 달성키위해 영상미디어를 카피한다는 그 이상한 현실이 변하는건 없다. 또한 스테이지의 일부를 떼어 USMC(美 해병대)에게 주인 역할을 넘겨주고 지금의 뉴스도 제대로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아프간과 이라크 전장 속 차세대 미군의 활약상에 대한 호기심에 응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콜 오브 듀티 4>는 갑작스러운 핵폭풍에 휩쓸려 이국의 흙바닥에 헬기가 추락하고는 생존자의 눈을 빌려 그 죽음의 문턱 아주 말미에서 모든 것이 모래처럼 산산히 부서져나가는 문명의 끝 같은 광경을 가감없이 선보인다. 물론 그것 역시 당장 보고싶다거나 혹자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나쁜 죽음이나 폭력이나 종말의 재연이라도 제 손으로 꾸리고 거리낌없이 과시할 수 있다는 지금 미디어의 그 과도한 의지에서 나온 자극적인 비주얼이겠지만, 어찌됐건 이들은 굳이 플롯에서 희생자를 만들면서까지 그 과장된 풍경을 미디어로 직접 목격해야 한다고 못을 박고 유저로서 조작이 불가한 영역 속에 마치 그것은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무마하고는 거기에서 나오는 무력감을 섞어 과감히 현대에 대한 비전이라고 마음대로 호명한다. 평소같으면 지리하게 여겨질 그런 타입의 구성이지만, 이 작품의 그런 전개는 비로소 이들이 현실을 복제하는 '르포'의 정확히 대칭점에 서서 현재에 얽힌 폭력적이고 희생이 불가피한 숙명같은걸 좀 더 속 깊은 곳에서 자기만의 해석법으로 묘사하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들은 여전히 주인공이 전쟁에서 보기좋게 이기는 게임을 만든다. 무엇보다도 <콜 오브 듀티>에게 변하지않는 본질이 있다면 당연히 그 전지적인 승리의 공식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변한 것은, 흐르는 서사의 시간 속에 순리대로 정복의 지점에 도달하는 과정을 그리면서도 이제 뭔가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거스를 수 없이 어떤 운명과 동행해야한다"는 자기만의 시각을 점점 내보이는 것이다. 이 '현대 전쟁(Modern Warfare)'의 공식은 승리하고 쟁취함으로서 체제를 유지하는 변함없는 지금의 현실을 광고하지만, 동시에 그 정해진 침로의 주변 곁가지에서 겪어내는 비정상적인 희생이나 참극을 통해 세상의 어디 한 구석이 이미 무너져 버렸다는걸 더이상 가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애써 고칠 수 없다는걸 조심스레 자백한다. 게임 속 캐릭터의 말처럼 예전엔 5만명이나 살았지만 지금은 유령 도시가 되어버린 그 체르노빌의 폐허를 활보하던 도중에 우리는 굶주린 야생 개가 사람의 시신을 뜯어먹는 믿지못하게 역전(逆轉)된 광경을 목격하지만, 여기에서 이 게임은 그 개를 조심스레 피해가자고 제의한다. 그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믿는 것이다. 곧이어 사람의 세상이라고는 단지 흔적만 남은 그곳에서 야생 개들이 오히려 자기들의 세계라며 침입자들을 공격하고 쫓아내는 모습이 회색 빛 도시의 광대한 풍경과 병치될때, 그 순간이 주는 울림은 바로 그 '현대 전쟁'을 통해 성취하는 장대한 연합 제국들의 승전기 조차 결국 처음의 자기 세계를 온전히 보존하지 못하고 그저 일부분 부서져버린 잔재만을 쥔 채 어딘가 비인간적으로까지 몰락해버린 그 불안한 현실과 공존해야할 뿐이라는 비극에서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게 때늦은 세기말의 종말론 같은 것에서 영향을 받은 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히틀러의 잔당들을 물리쳐냈다는 2차대전의 그 때와는 다른 지금 시대의 복잡다난한 스펙트럼을 슬며시 비유한다.

아주 호들갑을 떨면서 말을 했지만, 이 게임은 아주 놀라운 장점들과 더불어 시리즈 대대로의 단점도 여전히 남아있는 작품이다. 지나치게 당대에 유행하는 어떤 다른 유명 상품을 의식했다던가, 솔직히 구성 상에서 감동을 준답시고 힘을 준 포인트들의 대부분은 좀 대놓고 치기어리거나 혹은 성숙하지 못한게 몇 가지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타이틀이 가지는 큰 미덕이라면 무언가를 똑같이 카피하거나 보기좋은 하이라이트만 추려내던 방법론에서 발전해 독자적인 화법을 찾아가는 것이다. 자기들만의 상업적 성공의 패턴에 안주하며 만들어냈던 2편에 비해 이들은 여기에서 다시 베를린 국회의사당의 최상층으로 달려가며 종전의 해방감 같은걸 표현했던 1편의 그 미디어적 표현 언어가 가지는 매력에 대해 다시 심도있게 질문한다.

이 게임에게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여전히 주인공이 되는 미국과 영국의 땅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게 불가능한 이유는, 지금으로선 당장 잘 팔려야만 존재가 입증되는 비디오게임 시장에서 사실상 도전이란게 제한되는 것처럼, 9.11 테러 이후 제 1세계 전쟁에 대한 무한대적인 불안감이 만든 그 사회적 검열이 상주하기 때문이다. 누구도 쉽게 그런 시도를 할 수 없는 세상이며 인피니티 워드도 아직은 그 타협에 구속될 뿐이지만, 그래도 이들은 점점 절충해나간다. 그게 완벽하다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게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 것이다.


2007.12.28





나도 이렇게 글쓰고 싶다.....

후반부의 시각적 묘사 혹은 시각적 느낌을 주는 글들 좀 짱인듯

내공이 후덜덜

하지만 어떤님이 리플단거보니

이런글의 공통적인 문제는

제작자가 아무생각 없이 만든거였으면 좀 낭패 란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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